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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
남원의
남원포커스 제3대 춘향영정 제작에 대한 진실과 오해
열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축제 중 가장 오래된 축제인 춘향제가 올해로 93번째 개최된 가운데
2 남원시가 춘향영정 봉안 문제를 새 춘향영정 제작으로 매듭짓고, 62년 만에 새롭게 제작된
공공재
춘향영정을 지난 5월 25일에 춘향사당에 봉안하면서 그간 논란이 돼왔던 춘향영정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이에 다양한 이해와 가치를 가진 남원시민들의 알 권리
춘향영정 충족을 위해 제3대 열녀 춘향영정 제작 과정을 소개, 그 가치를 되짚어 보고 영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돕고자 한다. | 편집자 주
公共財
(
( 춘향제 남원에서 ‘춘향’은 단순히 판소리 <춘향가(春香歌)>의 여자 주인공으로 인식
그 위대한 시작, 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춘향영정 이도령과 춘향이 처음 만난 광한루, 이별의 눈물을 뿌린 오리정, 춘향이 버선
제작기 히스토리 을 벗어 던지며 울었다는 버선밭 등 소설 「춘향전」을 이루는 공간이 현실 세계
에서도 뚜렷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데다 남원의 상징답게 ‘춘향’은 1931년
부터 매년 춘향제를 통해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춘향제는 1931년 일제강점기에 남원의 유지들과 권번, 지역의 국악인들
의 참여 속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춘향의 절개를 이어받고자 사당을 건립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남원소식
그렇게 올해까지 93회째 춘향제가 열렸고, 그 중심에 춘향의 지고지
순한 정절을 상징하는 ‘춘향제향’과 ‘춘향영정’이 존재했다.
남원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듯이, 춘향영정은 장구한 세월 동안
남원 춘향제를 이끌고 지켜온 춘향제의 대표적인 표상이자 남원의
또 다른 공공재(公共財)라고 할 수 있다. 무형적 가치가 커서다. 여름
그런 영정의 역사는 1931년 건립된 최초 남원춘향사당에서 진주 사람 강 씨가
그린 춘향영정이 봉안된 것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최초 영정.
이후 1939년 가을, 이당 김은호의 춘향영정이 봉안됐지만 한국전쟁 때 멸실돼
1961년에 그가 두 번째로 다시 그린 춘향영정이 이후 59년간 사당에 걸렸다.
그러나 김은호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는 등 친일작가
김현철作 진주 사람 강 씨가 그린 최초 춘향영정(위)
14 광한루원 춘향사당에 봉안된 제3대 춘향영정 이당 김은호가 그린 춘향영정(아래) 로 밝혀지면서 친일잔재청산 일환으로 2020년 9월에 철거됐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