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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역사이야기 | 남원 요천변 빙고





                           정유재란때 얼음으로 부상자 살려



             1500년대 말에 제작된 남원 고지도에는 광한루  길가던 노스님“얼음 요긴하게 쓰일 것”

             맞은편에 있는 요천변 승월대 옆에 빙고가 표기
             되어 있다.                                       정자나무에 있던 한 청년이 스님에게 달려가 “
             글자 그대로 얼음을 넣어 두었던 창고가 요천변                    방금 전에 한 말이 무슨 말이었냐”고 물으니 “요
             승월대 옆에 있었다는 말이다.                             천 건너편 바위 아래에 굴을 파고 겨울철에 얼음
             조선시대 빙고는 대부분 한양이나 경주 같은 곳                    과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백급이라는 약초를 구
             에 있었고, 왕실이나 고관대작들이 여름철에 사                    해다 가루를 내어 굴속에 넣고 봉함해 두면, 내
             용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여름철 얼음은 귀한 물                   년 여름에는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
             건이었고, 임금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하사하기                     라고 일러 주었다.
             도 했던 특별한 것이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범상해 보이지 않는
             그런데 지방의 작은 고을이었던 남원에 빙고가                     스님의 이야기이니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있었다.                                         이라며 그날부터 요천 변에 동굴을 파기 시작하
             겨울철 요천 변의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철에                    여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서야 굴을 완성했다.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할 수 있                    조금 지나 엄동설한이 되었고, 사람들은 스님

             으나, 그러기에는 여름철에 얼음을 사용할 소비                    이  말했던  대로  요천에서  얼음을  가져다  동굴
             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문이 있다.                          에 가득 채우고 백급 가루를 함께 넣어 봉함해
             지방의 관리가 여름철 얼음을 사용한다는 것은                     두었다.
             백성을 돌봐야 하는 청백리의 목민관을 요구하던
             당시의 제도가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는가
             그렇다면  남원  요천  변의  빙고는  무슨  이야기               싶더니 8월이 되자 조선을 침략한 왜적은 남원
             를 가졌을까?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지난 지 2년                   으로 물밀 듯이 쳐들어와 남원 성은 함락 되었
             의 세월이 흘렀다.임진년에 왜적들이 경상도에                     고,  남원  사람  만여  명은  장렬한  죽임을  당하
             서 저질렀던 만행을 들었던 남원 사람들은, 언                    였다.  피를  흘리는  부상자  또한  수천  명에  달
             제 왜적들이 남원까지 쳐들어올지에 대한 두려                     했다.
             움을 가졌다.                                      살아남은 노인들이 피를 흘린 부상자들을 치료
             그해 여름 사람들이 요천 변 정자나무 아래에서                    하려 했으나, 피를 멈추게 하는 약이 없었다.
             임진년 왜적들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걱
             정을 하고 있었다.                                   이때 어느 노인이 “백급이라는 약초 가루와 얼
             마침 백발이 하얀 노스님이 요천을 건너려다가,                    음이 있으면 금방 피가 멎을 것인데 남쪽에만 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는 백급 약초와 이 더위에 어디에서 얼음을 구할
             나룻배로 가 버렸다.                                  수 있을 것인가?” 하고 한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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