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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월산리 M5호분 발굴 후전경
또한 신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 출토품과 흡사한 철제초두( )
를 비롯하여 금제 귀걸이, 갑옷과 투구, 기꽂이 등 가야계 위신재도 포
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출토품은 운봉가야가 중국과의 독자적인 외교
를 했음을 추정 해 볼 수 있는 단서다. 운봉가야가 중국과 독자적
인 외교를 펼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학계에서
는 운봉고원에서 생산된 당시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았던 철
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월산리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두락리에도 40여기의 가야계 고총이 군락지어
있다. 2013년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 32호분 발굴조사는
학계를 또 다시 놀라게 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월성리 M5호분에서 출토된 철갑
도굴되었음에도 32호 고분에서는 무령왕릉 수대경과 비슷한 청동
거울을 비롯해 금동신발, 철촉다발, 말뼈, 토기 40여점, 철기 100여
점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금동신발은 가야문화권에서 처음으로 출토돼 비상한 관심을 모
았다. 이러한 유물은 운봉고원이 당시 막강한 세력을 이루었던 가야계
의 국가, 즉 기문국(己汶國)이 존재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남원 이야기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