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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동 행정복지센터

선원사철조여래좌상

선원사철조여래좌상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용성로 151
  • 종목 : 보물 422
  • 지정일 : 1965.7.16
  • 비고 : 신라 헌강왕(875) 도선국사 창건
선원사

선원사(禪院寺)의 약사전(藥師殿) 앞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입석과 같은 것이 서 있다.
오른쪽의 것은 八葉의 覆蓮무늬를 座臺로 한 입석으로 78㎝(흙에 묻힌 받침대 제외)이고, 두께는 33㎝의 팔모꼴로 되어 있다.
왼쪽에는 오른쪽과 전혀 다른 형태의 입석이 있는데 높이는 62㎝(흙에 묻힌 받침대 제외)이고 두께는 33㎝이다.
이것은 남원지방의 풍수설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원사는 신라 49대 헌강왕(875년) 원년에 신라말 고승 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

그가 선원사를 짓게 된 까닭은 주산인 백공산은 지극히 약하고 객산인 교룡산은 산세가 강대하므로 남원이 크게 발전하지 못할거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복사,만복사,선원사를 짓되 선원사는 백공산 날줄기의 끝에 세웠다.
선원사의 정문현판을 "萬行山禪院寺"라 쓴 것도 알고 보면 백공산의 모체가 천황봉하 만행산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큰 힘으로 교룡산을 눌러 보자는 의도에서 이와 같이 호칭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行舟形의 산세를 가진 남원이 풍량을 만나면 배가 기울기 마련이기 때문에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도록 돌핀(배가 정박해 있을 때 밧줄을 매는 돌)역할을 하는 입석을 이곳 선원사에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丑入首 未破'라하여 주산의 힘이 丑方에 들어와 蓼川에 의하여 未方으로 빠진다는 뜻인 바, 未方으로 빠진다는 힘을 막아 주는 뜻에서 未方에 人造로 山을 만들어 이에 造山里라 이름하고 왕정리로부터 조산리 밑 요천변까지 토성을 쌓았다 한다 또 말하기를 丑이나 未는 金木水火土의 오행에서 土에 해당되는 丑入首의 土가 약하고(백공산이 약하다는 뜻) 未破의 未土가 약하여 읍세(邑勢)가 더욱 빼어날 우려가 있어 이를 북돋우기 위하여 土生金의 원칙에 따라 선원사의 鐵佛(지금 현존함 : 보물 제 422호)을 모셨으며 그 철불의 힘을 더욱 왕성하게 발휘시키고자 純金으로 鍍金한 것이라 한다.

선원사철조여래좌상

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측되는 불상이다.
보물 422호인 이 불상의 두부에는 육계가 조그만하게 얹혀 있고 나발이 조식되어 있으며 귀는 짧고 눈이 들어간 편이다.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며 웃음을 띠고 있다. 목에는 3도 처리가 되어 있으며 얇은 통견의를 입었다.
팔은 자연스럽게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놓고 있으며 수인상은 좌우 손을 상향하고 있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신라말의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후불탱화는 승정 7년에 그려진 것으로 크기는 46×150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