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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운봉고원 내 가야계 고총에서 나왔다. 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철의 힘이다.
아직까지 금관가야나 대가야에서 출토되 운봉고원을 무대로 찬란히 꽃피웠던 마한
지 않은 최상급 위세품으로 운봉가야의 역 왕의 달궁터도, 운봉가야의 눈부신 발전
사적인 위상을 최고로 높였다. 상도, 우리나라의 철불이 실상사에서 최
초로 만들어진 배경도, 모두 철과 밀접한
삼국시대 이후 운봉고원의 제철유적이 문 관련이 있다. 따라서 운봉고원의 제철유
헌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시대 이전 적은 ‘십승지’ 혹은 ‘신선의 땅’으로 회자
에 개발됐을 가능성이 높다. ‘세종실록지 되고 있는 운봉고원의 숨겨진 비밀이 담긴
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철산지가 일목 블랙박스와 같은 것이다.
요연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운봉고원의
제철유적은 한 곳도 실려 있지 않기 때문 삼국시대 운봉고원에 꽃피운
이다. 삼국시대 니켈이 함유된 운봉고원 가야문화
의 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최고급
위세품을 운봉가야에 보낸 것으로 추측된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의 국경을 형성
다. 백제의 위세품을 비롯하여 대가야와 했고, 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라
소가야의 최상급 토기류가 공존하는 것도 놓는 경계선이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
운봉고원의 철 생산과 관련이 깊다. 산줄기 동쪽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전북에 속한 곳이 운봉고원이다. 조선
인류의 역사 발전에 철의 공헌도가 매우 시대 ‘정감록’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십승
높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대국가를 지에 그 이름을 올린 운봉고원은 달리 ‘신
출현시켰고, 대가야가 후기가야의 맹주역 선의 땅’으로도 유명하다. 백제의 중앙과
가야를 최단거리로 이
어주는 간선교통로가
통과하던 교통의 중심
지이자 전략상 요충지
이다.
운봉가야의 존재가 처
음 알려진 것은 1982년
월산리와두락리고분군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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