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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폐허된 남원성 복원 기록
유자광의 부친은 영광유씨 4세손 유규인데
황해도 관찰사와 경주부윤에 이르렀고, 형
자환은 전라관찰사를 하였으며, 유자광은
고죽동(황죽마을)에서 태어나 그의 형인 자
환이 용담사에서 글 공부를 할 때에 학문을
익혔다.
유자광은 세조 때 별시에 등재된 뒤 조정에
입문하여 악학궤범을 만들었으며 동래에 유
배되어 있을 때에는 그곳에서 도공들에게
글을 가르쳐서 남원으로 데리고 왔고, 그 도
공들로 하여금 유자광의 출생지인 황죽마을
에 가마터를 만들어 그릇을 굽도록 하였다
고 한다. 지금도 땅을 파다보면 여러 곳에서
그 흔적이 보인다.
또한 남원성이 폐허가 되자 유자광이 13여
년에 걸쳐 남원성을 복원했다는 기록도 있
다. 또한 고죽동 강정에서 유자광이 낚시로
유자광사적비
은어를 낚아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낚시터가
싸움이었으며 또한 자신들의 추악한 모습을 있으며, 말을 타고 내렸다는 승하마석이 그
감추기 위한 제물이 필요했고 그 제물로 얼 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고죽동을 유자광의
자라는 미천한 신분이면서도 자신들과 같은 참모습으로 세상에 당당히 내놓을 새로운
반열에 있는 유자광을 선택했던 것이다. 역사적인 관광지 ‘유자광 마을’로 조성하는
그렇다면 왜 유자광이 간신이라는 덤터기를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쓰고 희대의 간신이 되었는가? 요즘 남원에 거주하고 있는 남원출신 소설
그것은 남이의 친척인 남곤이라는 사람이 가 한분이 유자광의 일생을 소설책으로 출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유자광전’이라는 간하기 위하여 ‘유자
소설을 써 유자광을 간신으로 만들었던 것 광전’을 집필하고 있
이다. 다니 다행스런 일이
이제 우리 남원에서는 유자광이라는 역사적 며 기쁜 소식이 아닐
인 걸출한 인물을 남원만의 인물이 아닌 전 수 없다.
국적인 인물로, 그것도 역사의 근거와 사실 /유정근(무령부원군
을 바탕으로 해서 간신의 누명을 벗겨 당당 유자광의 17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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