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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필시 천렵을 즐겼을 것인데 그 때 여뀌꽃                념비도 요천이 지닌 소중한 자산이다. 남원
                   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방법은                  은 최제우가 관의 탄압을 피해 한동안 은거했
                   이렇다.  물가에 자라난 여뀌꽃 줄기를 끊어                던 인연으로 동학이 깊게 뿌리내린 곳이었
                   짓이긴 다음 상류로 올라가 수로에서 그것을                 다. 1894년 순창, 담양, 곡성을 거쳐 남원에
                   아래로 흘려보낸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잠시                 입성한 김개남 장군은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
                   기절을 하거나 죽기도 하여 손쉽게 잡을 수                 소를 열고 본격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김
                   있다. 이것이 여뀌가 지닌 어떤 성분 때문인                개남은 운봉의 벼슬아치였던 박봉양의 민보
                   지, 또는 정말 믿을만한 사실인지는 확인할                 군에 패하고 고향인 태인으로 돌아갔으나 생
                   수 없으나 맑고 푸른 요천과 그 위로 넘실대                포되어 즉결처분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
                   는 은빛 물고기 떼를 떠올릴 수 있는 것만으                는데 김개남이 집강소를 설치한 곳이 옛 남원
                   로도 이야기의 가치는 충분하다.                       군청 자리이며, 실질적으로 군사를 주둔시키
                    남원 일대의 여덟 가지 빼어난 풍경을 일컫                고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각종 행사와 집회
                   는 남원팔경에도 요천은 자주 등장한다. 여                 를 열었던 장소가 바로 요천인 것이다.
                   름밤이면 횃불을 켜들고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는가 하면 (3경 금암어화), 요천 백사장 위               이제 동학군의 함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로는 기러기가 떼 지어 날아다니며 (4경 비정               다. 여뀌꽃으로 고기를 잡던 농민들의 웃음
                   낙안), 교룡산에 비치는 저녁 놀 풍경이나 (1              소리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여뀌꽃이 피
                   경 교룡낙조), 광한루 위로 높이 떠오른 가을               고 진 그 세월만큼 요천은 흐르고 또 흐른다.
                   달(6경 광한추월)을 편안히 바라볼 수 있는                그 멈추지 않는 흐름 속에 동학군의 꽃잎 같
                   곳 또한 요천이다.                              은 피와, 새벽이슬과 같은 농민의 땀도 함께
                    제방을 따라 걷다가 만나게 되는 동학혁명기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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