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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동편제 판소리는 남원의 대표 인지상                 기회를 가졌고, 훗날 조선의 남원 소리꾼들
                   품인 광한루, 추어탕, 목기 부채 같은 문화들               은 추어탕의 보양식 덕분에 오랜 시간 소리를
                   을 만들어내는 마중물이었다.                         할 수 있다는 소리꾼의 재담에, 추어탕은 남
                   동편제가  소리꾼들의  생활을  넘어,  다양한              원의 명품 문화와 산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남원의 가치브랜드를 창출해 내는데 필요한                  장터의 소리판에서 춘향가를 듣고 사람들은
                   매체로 활용되었다는 것에서 이야기는 이어                  남원의 광한루와 춘향이를 선망하게 되었다.
                   진다. 동편제 소리꾼들은 남원의 역사적 정                 또한 그 장터에서 나무그릇에 운봉완이라고
                   체성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농축되어 있던 남                이름 붙여진 남원 목기 이야기를 했던 소리꾼
                   원의 문화유전자를 조선팔도에 유통시켰다.                  들의 재담은, 사람들에게 남원을 목기의 고
                   그것들의 스토리텔링 재료는 고려 말 이성계                 장으로 인식하게 했다.

                   장군의 승전지였던 황산대첩에서 자라기 시                   추어탕과, 판소리와, 목기가 조선팔도의 장
                   작했다.                                    터에서 황산대첩과 이성계와 조선개국의 이
                                                           야기에 연대되어 소리꾼들의 입을 타고 소문
                                                           나고 있을 때, 소리꾼들의 손에는 구슬땀을
                                                           식혀주는 품격 있는 남원의 부채가 들려있었
                                                           다. 이처럼 조선의 사람들은 동편제 소리꾼
                                                           이 부르는 소리판에서 남원의 추어탕, 판소
                                                           리, 목기, 부채를 알게 되었으며 소리꾼들은
                                                           그것을 소리판의 탕, 청, 완, 선이라고 했다.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의 승전지인 황산대첩지
                                                           옆에서 태어나 살았던 동편제 창시자 남원의
                                                           소리꾼 가왕 송흥록 명창은 황산대첩의 이야

                   왜장 아지발도의 피가묻었다는 피바위                     기 유전자를 키웠고, 훗날 그의 흔적이 함경
                                                           도에서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남
                   조선중기 무렵 지리산과 남원에는 소리꾼들                  원사람들에  의해서  조선팔도로  나아갔음을
                   이 살았다. 그들은 지리산의 산물을 등짐에                 의미한다고 하겠다.그렇게 남원 고을은 조선
                   지고 조선팔도에 있는 여러 고을의 장터를 다                개국의 씨앗이 되었던 지리산 황산대첩에서
                   니면서 소리판을 벌려 물건을 팔았다. 그 장                나온 이야기가 소리꾼들에 의해서 조선팔도

                   터에서 동편제 소리꾼들이 부르는 힘찬 소리                 에 스토리텔링 된 후 수 백년이 지났다.
                   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요즈음 그 고을
                   보고, 소리꾼들은 말했다.                          남원이, 안방에서 정도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의 군사들이 황산 뜰의                 전의  드라마로  세상과
                   전투에서 군량미가 바닥나서 생사의 갈림길                  다시 만나고 있다.
                   에 봉착할 때 미꾸라지를 잡아 풀대죽을 끓                           /글ㆍ김용근
                   인 추어탕의 보양식을 먹고 힘을 내어 승전의                      (지리산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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