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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역사 | 역사의 흐름을 바꾼 황산대첩

























                                      일제가­파괴한­황산대첩­파비각

             야 했던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 전투의 정체                시의 스토리텔링이었던 것이다.
             성을 들여다보기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 이야기의 유통망은 소설이기도 했고, 판
             지금 그 역사의 흔적들은 모두 지리산의 이야                소리이기도 했으며, 이야기꾼들의 재담이기
             기로 사람들의 유전자에 화석 되었다.                    도 했다. 요즈음 안방 왕국에서 보여 지는 정
             지리산 운봉 황산대첩을 기행하다 보면 그러                 도전 드라마의 시점에서, 또 다른 남원의 이
             한 이야기의 유전자가 곳곳에 있음을 볼 수 있               야기를 풀어보면 어떨까?
             기 때문이다. 지리산 운봉 이성계 장군의 황                남원은 역사 이래로 중추적인 도시로의 역할
             산대첩은 최고의 전략과 시기를 활용한 승전                 을 했고, 도호부라는 이름을 가졌던 남쪽의
             의 역사이며 그 기운은 조선이 되게 했고, 훗               근원이 되는 고을이었다.
             날 남원이  탕(湯)청(聽)완(碗)선(扇)의 고을             삼한시대 마한의 별궁이었다는 달궁의 역사
             이 되게 했다. 사람들은 남원하면 무엇을 가                를 시작으로, 고려와 조선을 지나면서 소경,
             장 먼저 생각해 낼까?                            도호부 등의 시대적 중심도시로 성장해왔다.
             몇 년 전의 어느 조사에 의하면, 상품적 인지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삼백여개
             도가 가장 큰 것은 추어탕이고, 공간적 인지                가 넘는 여타한 다른 고을들과 별반 다르지 않
             도가 가장 먼저인 것은 광한루로 조사되었다                 은 남쪽의 고을이 되었다. 그 고을 남원은 우
             고 한다.                                   월적인 각인 상품인 추어탕, 판소리, 목기,

             남원은 그 외에도 동편제와 목기, 부채 같은                부채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들은 탕(湯)청(聽)
             것들이 남원을 크고 높게 상징하고 있다. 그                완(碗)선(扇)이라는 문화가 되어 역사적 정통
             런데 이와 같은 남원의 상징적 상품과 공간물                성을 가졌다. 그것들은 남원의 지역성을 갖
             들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갔을까? 고을이                 고, 역사적 공간속에서 서로 융합되며 보완
             세상으로 나아간 동력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적인 활동체로서 상호 가치를 증대하고 진화
             그 고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사람들이                 하면서 남원의 문화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로  만들어,  세상              한 남원의 문화를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마중
             사람들과 소통하게 한 것이 요즈음 말하는 당                물 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동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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