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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역사 | 역사의 흐름을 바꾼 황산대첩




                             조선 역사의 시원지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





             요즈음 우리 안방에서는 600여 년 전의 시                로 참가했던 조상의 흔적을 방문해 보고 싶다
             공간 속에 화석되어 있던 이야기가 부활되                  는 것이었다.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오래

             고 있다.                                   전에 촌로들이 노인정에서 주고받던 이야기
             고려 말 역사의 큰 줄기였던 황산대첩의 이야                들을 섞어 지리산 운봉 황산전투의 내용을 이
             기가 정도전 드라마로 안방 왕국의 시청자들                 야기로 엮어본다.
             에게 다음날 화제 거리로 준비해야 할 만한 큰
             관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말 왜구들이 퇴각하면서 모여든 곳은 지
                                                     리산 운봉이었다. 퇴각하던 왜구들은 지리산
             정도전 드라마와 관련된 이성계와 황산대첩                  여러 고을 중에서 왜 운봉 땅으로 모여 들어왔
             의 이야기를 내었던 고을은 지리산에 있었                  을까? 사람들은 그러한 궁금증을 역사적 풀
             다. 그 고을은 삼국이전의 작은 부족에서 시                이나, 군사적 전략에서 찾으려 했다. 그리고
             작되어 가야와 백제, 그리고 통일신라와 고                 그것을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먹을 것
             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덧붙                  이 없어 병영을 이탈하여 지리산으로 도망을
             인 이야기를 가져야 했던 남원이다. 조선개                 갔다는 왜병의 이야기나, 생존을 넘어 고려
             국의 씨앗을 뿌렸던 고려 말 황산대첩의 역                 땅의 점령을 위한 야욕을 불태우던 왜군 소년
             사에는 기록되지 못한 남원의 이야기가 있지                 장수의 피바위가 가진 역사적 흔적은 많은 이
             않았을까?                                   야기를 숨겨 놓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정도전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게                 600여 년 전 왜군은 고려를 침략했던 처음과
             풀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진화시키면, 고                 는 다르게 최무선의 화약 맛을 보고 혼비백
             려 말 왜군들이 왜 지리산 운봉으로 들어 왔을               산했고, 고을마다의 용감한 의병과 사람들의

             까? 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용맹성에, 무기도 챙기지 못한 채 도망치거
             십 오년 전쯤에 조상의 발자취를 찾아 남                  니 후퇴를 해야 했던 것이 다반사였다. 각 진
             원을 방문했던 나이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영들마다 오합지졸이 된 왜병들은 흩어졌다
             있었다.                                    가, 남해에서 올라온 지원군과 함께 지리산
             그의 한국과 남원 방문의 목적은 집안에 내려                운봉에서 합류한자가 상당수였고, 시간이 지
             오는 조상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흔적을 찾아                남에 따라 전열이 정비되자, 고려군에 위협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인즉, 자신                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퇴각하던 왜군
             들의 조상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말발굽의 편                 들이 지리산 운봉으로 모여든 것은 혼란한 상
             자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고려 말 때 지리산               황에서도 나름의 전략이 있어 보인다.
             의 황산에서 있었던 전투에 말발굽 편자 병으                그것은 그들의 주 무기인 칼과 병사들의 밥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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