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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90년을 고합니다.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77 춘향공연
1962 춘향선발
춘향제향
버선밭 등 소설「춘향전」을 이루는 공간이 현실 세
사람으로 치자면 한 세월을 꼬박 계에서도 뚜렷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다 남
살아온 90세 명인, 말 그대로, 노익장을 원의 상징답게 ‘춘향’ 은 1931년부터 매년 춘향제를
맘껏 발산하는 ‘춘향옹’ 쯤 되겠다. 통해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춘향제는 1931년 일제강점기에 남원의 유지들과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절부터 우리 민족을 위로하 지역의 국악인들의 참여속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춘
고, 기쁘게 만들었던 춘향제가 올해로 90회를 맞이 향의 절개를 이어 받고자 사당을 건립하고 제사를
한다. 지내면서 본격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최일정은 연기됐으나, 90년이 그로인해 제1회 때에는(1931년) 춘향과 이도령이 처
란 장구한 세월동안 우리 곁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 음 만난 것을 기념하는 단옷날에 남원 권번(券番)주
랑하며 머물러온 춘향제를 기념해, 개최에 앞서 켜 관으로 전국 각지의 명기(名妓) 1백여명이 모여 최초
켜이 쌓아온 춘향제를 되돌아본다. 로 건립한 춘향사당에서 최초의 춘향제를 올렸다.
춘향제, 그 위대한 시작 문화축제의 면모를 갖추다
남원에서 ‘춘향’ 은 단순히 판소리 <춘향가(春香歌)> 제5회 때부터는 농번기를 피해 춘향 생일인 음력 4
의 여자 주인공으로 인식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월 8일에 제사를 올리고, 규모와 격식을 갖춰 진행
했다.
이도령과 춘향이 처음 만난 광한루, 이별의 눈물을
뿌린 오리정, 춘향이 버선을 벗어 던지며 울었다는 초기 춘향제는 풍류문화에 기반한 민속적 축제
※1994년 가장행렬
4 _사랑남원
4 _사랑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