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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피어나다    史적인 남원

          뜨거운 남원의 혼(魂)이 깃든


          만인의총, 역사 교과서 등재





          정유재란(1597년) 당시 최대 격전지인 남원성 전투와 만인의총(萬人義塚) 관련 역사적
          사실이 2024년도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재되었다. 만인의총 역사 교과서 등재 국회
          결의(본회의, 2022년 11월 24일) 이후 1년여 만의 값진 성과다. 게재의 숨은 주역 중
          한 명인 정영환 전 만인의총 관리소장을 만났다.














          “일본군이 먼저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남원으로 침략하자 이에                  운명과도 같았던 남원성과의 만남
          맞서 남원성에서 조·명 연합군 및 의병, 백성 등 만여 명은 죽음으               “2022년 7월 1일 부임해 2023년 7월 20일까지 만인의총 관리소
          로 맞서 싸웠다(남원성 전투).” 천재교육이 출판한 『2024년도 중              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정확히 1년 20일 동안 남원에서 만인의총
          학교 교과서 역사2』 129쪽에 수록된 남원성 전투에 대한 내용이                과 함께 생활을 한 셈이지요. 그전까지는 남원과 특별한 인연은
          다. 그 옆에는 만인의총 사진을 수록, ‘남원 만인의총(전북 남원)’이             없었습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남원에 도착한 정영환 문화재청 행정사무관, 아니 당시 만인의총
          사실 ‘만인의총’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지난 1981년 4월 1일. 이            관리소장은 부임 후 거의 매일 같이 남원성 북문터 일대를 산책했

          후 매년 9월 26일마다 제향을 올리며 그 숭고했던 뜻을 기리고 있               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을 오갈 때마다 정유재란 당시 가장 치열한
          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               격전장이었던 남원성 전투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로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역사 교과서 등재로 그동안의 아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이 전쟁을 끝내고 본국으로
          쉬움이 모두 해소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돌아가기 위해 진행하던 강화협상이 결렬되자, 정유년(1597년)에

                                                              재차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 사건을 가리킨다. 정유
                                                              재란은 호남 지방 장악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실
                                                              패가 곡창지대인 호남 지방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도요
                                                              토미 히데요시의 판단 때문이었다. 호남 지방을 향한 살육전과 다
                                                              름 없었던 정유재란은, 남원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는다. 남원은 당
                                                              시 호남의 중심이라 할 수 있던 전주로 향하는 인후지지였기 때문
                                                              이다. 남원성 함락을 위해 동원된 왜군의 숫자는 56,800명에 달했

                                                              지만 수성을 위한 병력은 조선군 1,000명과 명나라군 3,000명이
                                                              고작이었다. 여기에 6,000명의 남원 백성들도 힘을 합해 나흘 밤
                                                              낮을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정 전 관리소장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게 너
                                                              무나 안타까웠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끝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수
                                                              성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의의가 축소된 것은 아닐까 생각

             정영환 전 만인의총 관리소장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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