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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면 행정복지센터

인월면 역사

인월(引月)은 삼한시대 변한(弁韓)에 속하였고 신라 경덕왕 15년(784) 까지는 모산현(母山縣)에 속했고 785년에 모산현이 운봉으로 바뀌면서 천령군(天嶺郡 : 지금의 함양군)의 관할이 되었다. 고려 태조 23년(940)에는 역원(驛院)이 설치되어 남원부(南原府) 운봉현(雲峰縣) 인월역(引月驛)이라 하였다.

1895년(高宗 32년) 제1차 행정구획 개편에 따라 운봉현이 운봉군으로 승격됨에 따라 운봉군 동면에 속하다가 1914년 제2차 행정구획 개편에 따른 운봉군 4개의 면(운봉면, 동면, 아영면, 산내면)으로 분리되어 남원군에 편입됨으로서 다시 남원군 동면이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동면이 되었고, 1998년 5월 1일 인월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운봉읍 연혁 참조)

본래 운봉군(雲峰郡) 동면(東面) 지역으로 장재(長才), 수성(水聲), 석치(石峙), 중군(中軍), 구인월(舊引月), 신인월(新引月), 신우(新牛), 용계(龍溪), 서무(西茂), 계암(桂岩), 사창(社倉), 구평(九坪), 용암(龍岩), 자래(自來), 내건(內乾), 외건(外乾), 성내(城內), 도장(道庄), 유곡(酉谷), 상우(上牛), 중우(中牛), 하우(下牛), 성산(城山)의 23개 리(里)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지하면(地下面) 이동(梨洞) 일부를 병합하여 남원군에 편입되고 명칭은 그대로 인월면(引月面)이라 하여 중군, 인월, 서무, 취암, 건지, 유곡, 상우, 성산, 자래 등 9개 법정리, 22개 행정리, 56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월면 유래

1380년(고려 우왕6년) 키가 7척(尺)이 넘는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영남을 거쳐 북진을 하는데 삼도 도원수(三道 都元帥) 이성계 장군이 황산(荒山)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지발도가 팔량재를 넘어와 대치중 신궁 소리를 들었던 활솜씨로 퇴치할 작전이었으나 날이 저물고 마침 그믐밤이라 적군과 아군의 분별이 어려워 싸움을 할 수가 없어서 하늘을 우러러 "이 나라 백성을 굽어 살피시어 달을 뜨게해 주소서"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자 잠시후 칠흑같은 그믐밤 하늘에 어디서 솟아 올랐는지 보름달이 떠 천지가 개미 기어가는 것 까지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밝았다.
때를 놓치지 않은 이성계는 부원수 퉁두란으로 하여금 먼저 투구를 쏘게 해 화살이 투구를 맞추자 아지발도는 끈이 벗겨지려 하는지라 입을 벌려 벗겨지는 것을 막으려하는 찰라 이성계 장군의 화살이 목구멍을 꿰뚫어 죽었는데 그가 흘린 피자국이 지금도 황산 람천에 있는 피바위에 남아 있으며 이때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 올렸다하여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