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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면 행정복지센터

초리

본래 남원군(南原郡) 초리면(草里面)의 소재지 마을이었는데 1907년 초리면이 수지면에 병합되어 수지면 초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창리(南倉里) 일부를 병합하여 초리(草里)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 초리가 되었다. 초리에는 초리(草里), 서당(書堂) 등이 있다.

초리 초리(草里)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초리면(草里面)의 소재지 마을이었는데 1907년 초리면이 수지면에 병합되어 수지면 초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창리(南倉里) 일부를 병합하여 초리(草里)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 초리가 되었다.본래 남원군(南原郡) 초리면(草里面)의 소재지 마을이었는데 1907년 초리면이 수지면에 병합되어 수지면 초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창리(南倉里) 일부를 병합하여 초리(草里)라 하였다.1715(숙종 41)년 춘 3월 어느날 서른이 갓 넘은 준수한 남자와 그의 처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아들로 보이는 어린아이 2명이 말(馬)을 버드나무에 매어 놓고 맑게 흐르는 냇물가 언덕에 걸터 앉아 긴 여정의 피로를 잠시 쉬고 있었다. 뒤에는 용이 웅크리고 앉아 감싸도는 듯 높지 않는 산이 병풍처럼 둘려져 있고, 앞으로는 비단폭을 펼쳐 놓은 듯한 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툭 트인 넓은 들, 그리고 금방 용이라도 치 솟을 듯한 파란 연못(용쏘)이 있어 아름다운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정착하였는데 지금의 초리(草里)마을이다. 이 사람은 곡성군 고달면 죽림(竹林)에서 온 유원화(柳元和)이고, 그의 처 죽산 박씨(竹山朴氏) 그리고 동삼(東三), 양삼(陽三) 두 아들과 그의 후손이 오늘날 유명한 초리의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조선조 말엽까지 곡성군 고달면과 송동면 일부 그리고 수지면 일부로 형성된 초리방(草里坊)이 있어 문화, 경제, 농업, 행정의 중심역할을 했으며, 1907년에 수지방과 통합하였다. 이 곳을 초리라 이름한 것은 문화유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이 황해도 문화현 초리방에서 태어났는데 시조의 탄생지 이름을 따와 초리라 명명 했다는 설과 산이 적고 들이 많아 갖가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풀이 많다하여 초리(草里)라 했다는 설이 있다.

초리 서당(書堂)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수지면(水旨面) 초리(草里) 지역으로 서당골, 서당동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창리(南倉里) 일부가 병합되어 초리(草里)라 하고 초리에 편입되었다.고려말 공민왕때(1370년경) 어느날 나귀를 타고 온 선비 진주강씨(晋州姜氏)가 고요하고 적막하며 양지 바른 이곳에 터를 잡아 글쓰기에 필생의 업을 삼아 조용히 살았다 한다. 그후 진주 하씨가 이주해와 마을의 형태를 갗추게 되었다. 사방이 대밭으로 둘러 쌓여 옛 귀양객의 은신처나 피난처로 알려져 있으며, 외부가 잘 보이지 않은 탓인지 보수적 기질과 유림의 기풍이 남아있어, 구습이 농후한 마을이기도 하다. 600여년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직 글 읽고 글쓰기에만 열중한 그의 후예들은 별 진전을 보지 못 했으며 오늘날 30여 세대로 성장한 마을이다. 사방이 대밭으로 둘러쌓여 은폐된 한적한 곳이어서 서생이나 유생들이 글 쓰고 책 읽기에 알맞아 서당이 발달당한 것이 전래되어 서당동(書當洞)이라 부르게 되었다.본래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서당(鼠堂)이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이 마을에 늙은 쥐가 도장(창고)에 들어있는 격, 또는 늙은 쥐가 먹이를 구하러 밭으로 내려 오는 형국인 노서하전(老鼠下田)이라고 하는데, 병풍을 친듯한 아름답고 기름진 곳에 쥐(鼠)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들판에 있는 곡식을 물어 날라 야적하여 쥐의 왕국을 건설하여 쥐 서(鼠)의 서당(鼠堂)으로 부르다 1800년경 서당(鼠堂)을 서당(書堂)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여전히 쥐가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