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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긴 눈이 내릴수록
                                                        조선의 산하 피로 물들고
                                                        역설의 이름들만 온 산하에
                                                        비명 되어 새겨져 가네
                                                        - <빨치산의 밤> 중에서


                                                        마을 뒤편 언덕을 오르니 두 그루의 소나

                                                        무가 보는 이의 숨을 고른다. 앞의 것이
                                                        천연기념물 424호로 지정된 ‘천년송’이
                                                        다. 천년송은 할매(할머니)나무라 불리
                                                        는데 이 나무로부터 20m쯤 떨어진 곳에
                                                        한아시(할아버지)나무가 한 그루 더 있
                                                        다. 예로부터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들이
                              와운마을­건강밥상                 몰려와 한지에 싼 밥을 할매나무 밑에 묻
                    와운마을의 역사는 1300년 전으로 거슬              고는 새끼줄을 꼬아 할매나무에 세 바퀴
                   러 올라간다. 지금의 반선, 더 정확하게               두르고 동동주를 세 곳에 나누어 뿌리는
                   는 지리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 자리에 송                치성을 드렸는데 마침내 수태한 여인들은
                   림사가 창건될 때 마을이 함께 생겼다는                다시 천년송을 찾아 뱃속의 아이에게 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람 소리를 들려줬다고 한다.
                    1595년경 영광 정씨와 김녕 김씨가 임진
                   왜란을 피해 피난처로 삼은 곳이라는 이                누가 심었는지 애솔 하나 자라
                   야기도 있으니 못해도 400년은 된 마을               마을지킴이로 천년송이 되고
                   인 셈이다.                               서리서리 용비늘 뒤집어 쓴 채 꿈틀거리
                                                        면 온 골짜기 청비늘 가르는 솔바람 소리
                   마을 언덕에 지리산 수호신 천년송                   겹겹 에워싼 저 능선들의 이마가 서느랍다.

                                                        -송수권의 <솔바람 태교> 중에서
                    지리산 자락 오목한 곳에 편안하게 자리
                   잡은 마을의 형세를 보면 피난처로서 더                천년송 앞에 서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 고즈넉한 마               다. 초록의 병풍을 둘러친 듯 안온하고 고
                   을도 시대의 아픔에서 비켜나진 못했다.                요하다. 서쪽 심마니 능선 너머 정령치와
                   여순사건을 주도한 좌익성향의 군인들이                 큰고리봉은 어제인 듯 아득하고 내일인
                   이곳으로 도주하여 빨치산과 합류하였고                 듯 확연한다. 평범한 이들의 오롯한 소망
                   한국전쟁 당시에는 낮에는 국방군, 밤에                하나 넉넉히 안아 줄 천년송과 고단한 일
                   는 인민군에게 시달리다가 마을전체가 소                상의 넉넉한 쉼표를 자처하는 와운마을
                   개되었던 악몽 같은 기억 또한 남아있다.               속에 잠겨 하늘도 잠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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