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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동 행정복지센터

만복사지

만복사지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왕정동 481번지
  • 종목 : 사적 제349호
  • 시대 : 고려시대
  • 지정일 : 1991.3.29

기린산(麒麟山)을 북쪽에 두고 남쪽은 넓은 평야를 앞에 둔 동산에 있다.
《용성지(龍城誌)》에 따르면 통일신라 후기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현존하는 유구는 고려 문종(1046~1083) 이후의 것이며, 1979~1985년 전북대학박물관 조사팀이 발굴조사하였다.
가람의 배치는 1탑 3금당식(金堂式)으로, 본탑을 중심으로 북 ·동 ·서에 각각 금당이 있고 그 북쪽과 남쪽에 강당·중문이 있다.
이런 배치는 특히 1탑 3금당식과 다른 차이점을 보이는데, 즉 서쪽 금당터가 북·동 금당터보다 규모가 크다.
특히 이 절터는 고려 문종 때 창건된 동탑서전(東塔西殿) 가람배치와 조선시대의 1탑 3금당 가람배치가 중복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만복사에 대한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상 기록과도 일치되어 가람배치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만복사지5층석탑(보물 30)과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만복사지석불입상(石佛立像:보물 43), 만복사지석좌(石座:보물 31), 만복사지당간지주(보물 32) 등이 보존되어 있다.

만복사지는 정유재란 남원성 싸움 시 소실된 후 1679년 (숙종 4년) 남원부사 정동설이 복원 을 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저자 김시습은 만복사를 배경으로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라는 한문소설을 남겨 한문소설의 효시를 이루었으며, 당시 만복사의 실상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집인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수록된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편 중 하나이다.
남원의 떠돌이 노총각 양생(梁生)이 만복사(萬福寺)에서 부처와 저포(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겨루는 유희) 놀이를 하여 이기자 소원이었던 배필을 맞았다.
그러나 알고 본즉 그녀는 어느 귀인(貴人)의 죽은 딸이 현신(현신(現身))한 영혼이었다.
실망한 양생은 그 후 지리산으로 약초를 캐러 간 후 소식이 끊겼다는 줄거리이다.
이 작품을 두고 중국의 《전등신화(剪燈神話)》를 본뜬 것이라고 흔히들 말하나, 이 작품에 이르러 한국의 소설문학이 비로소 그 형태를 완전히 갖추게 되었으므로 단순한 모방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