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왕묘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왕정동 51번지
- 종목 : 왕정동 51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73. 6. 23
일전설에 의하면 선조(宣祖) 25년(1592) 4월 14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倭軍)은 평양을 빼앗고 장차 중국까지 쳐들어갈 기세이므로 명(明)나라에서는 용장(勇壯) 이여송(李如松)을 보내어 왜군(倭軍)을 물리치도록 하였으나, 전국(戰局)은 일진일퇴로 싸움은 밤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수천(數千)의 신병(神兵)이 나타나 왜군(倭軍)을 물리치니, 이때 어두운 밤 신병(神兵)을 거느리고 나타나 왜군을 물리친 장군이 관우운장(關羽雲長)이었다.
이에 관운장(關雲長)의 은덕을 길어 그를 숭배하는 묘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끝난 후 명장(明將) 유정(劉鋌)이 선조(宣祖) 32년(1599) 정월(正月)에 부내동문(府內東門) 밖에 터를 마련하여 관운장(關雲長)의 소상비(塑像碑)를 세운 것이 시초가 되어, 숙종(肅宗) 42년(1716)에는 본부(本府) 유지(有志) 박내정(朴乃貞)이 동문성내(東門城內)에 누각을 세워 소상(塑像)과 석비(石碑)를 이에 옮기었다.
그 후 영조(英祖)17년(1714)에 부사(府使) 허린(許燐)이 현 위치에 옮겨 놓았다.
관왕묘는 서울, 안동, 성주, 남원 등 전국적으로 4곳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남원 관왕묘이다.
현재 관왕묘(關王廟)는 흙으로 빚은 관우의 소상(塑像)을 봉안하고, 춘추(春秋)로 향사(享祀)하고 있다.
맞배지붕으로 된 한식 목조기와로 되어있으며 관왕묘 창건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