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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매면 행정복지센터

대율리

사매면 마을소개 지도 대율리 위치

본래 남원군(南原郡) 사동면(巳洞面) 대율리(大栗里)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대율리, 서촌리(書村里), 화정리(花亭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율리(大栗里)라 하고 사매면(巳梅面)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사매면 대율리가 되었다.

대율리 대율(大栗)마을

최초 광주 이씨(廣州李氏)가 정착하였다.
중종13년(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광주 이씨(廣州李氏) 8세손 이호문씨 아버지 이종경(7세손)을 모시고 영동으로 은거 하였으나, 그 후 갑자사화(1624년)가 일어나 광주이씨를 처단하려 하자 그의 아들(9세손) 천효(天孝)가 종족을 보존키 위하여 여기저기 은둔하다가 산세가 삼면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은둔하기에 적합한 이곳에 안주하게 되었다. 그 후 진주 형씨(晉州邢氏)가 마을 서편에 이주 정착하였고 청주 한씨, 광산 김씨, 한양 조씨, 진주 강씨 등이 이주하여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을 이름을 대율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마을의 뒷산에 밤혈(栗穴) 명당이 있고, 마을 서편의 서촌마을 그 밑의 골짜기 마을을 모굴, 남원을 가는 길목에 있는 쌍거리(삼거리), 박석치 등을 통칭하여 한밤(큰밤), 한배미(栗峙) 등으로 불리어오다가 1860년경 큰대(大) 밤율(栗)을 따서 '대율'이라 고쳐 불렀다.

남원으로 가는 삼거리 주민은 국도확장 등으로 본마을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고개를 '밤재'라 부르고 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0년경 100여호의 큰마을로 번창하게 되고 이에따라 1973년 마을에 초등학교를 설립 개교하였으나 이농현상 등으로 인구수가 격감하게 되자 이에 따른 학생수도 감소하여 1993년 폐교 되었다.

지리적 위치
  • 사매면 소재지에서 남쪽 5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우측으로 국도 17호선이 통과하고 있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이 338ha로 사매면 전체의 10.2%를 차지하고, 가구는 81호로 사매면 전체의 9%이고, 인구는 179명(남 96명, 여 83명)으로 사매면 전체의 10%이다.
지 형
  • 마을뒤로 수려한 산과 마을앞 구릉의 농경지로 형성 되었다. 병풍처럼 둘러친 소나무숲이 울창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마을 앞으로 월평천의 지천인 대율천이 흐르고 있고 해발 160m이다.
교통 및 통신
  • 시내버스 노선은 남원~대율~화정간 1일 4회 운행하고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미맥위주의 순농업이며, 일부 담배, 고추, 축산업 등을 겸하고 있다.
종교시설
  • 대율교회가 있다.
주요기업
  • 자동차 정비소인 남원공업사와 철구조물 제작업소인 대영샤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