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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문화 인사 이야기 | 서울대 김병종교수
“남원은 어머니와 같이
정감있고 따뜻한 곳”
남원은 예부터 어머니의 품과 같이 넉넉한 지 교수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가로 우뚝
리산과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 설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남다른
里)로 불리는 비옥한 들판이 펼쳐져 물산이 넉 노력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내력이 뒷받침
넉했다. 이같은 자연적인 풍족함 덕분에 남원 되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부친은 인근에
은 판소리 동편제, 춘향제, 만복사지저포기 등 이름을 날린 문장가였다고 한다. 김 교수 또
유ㆍ무형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명인명창 등 한 감수성이 남달라 사생대회나 백일장 대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 많은 문화인사가 배 에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런 연유
출됐다. 시정소식지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 로 김 교수는 어린시절 자신의 이름보다 ‘책
원」은 남원이 낳은 문화인사의 삶을 시리즈로 읽는 소년’으로 통했다. 그러나 배고팠던 시
싣는다. 이번 호에는 첫 번째로 서울대 미술대 절 책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학교 김병종 교수이다. 어려웠다. 김 교수가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
던 데는 형님의 영향이 컸다. 당시 전북일보
어린시절 책읽는 소년으로 통해 와 조선일보 주재기자를 역임했던 형님은 원
김병종 교수는 한국전쟁이 막바지였던 1953 고를 작성해 열차편으로 기사를 송고했다.
년 송동면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만 60세이 김 교수는 그런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자연
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어 스럽게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삶속에 스
린 시절을 더욱 어렵게 보내야 했다. 이런 김 며들었다. 세계전집은 물론 역사ㆍ종교ㆍ문
생명을 주제로한 김병종 교수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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