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을 쓴 이유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는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어쩌면 장승은 제 온몸을 붓대로 세우고, 생애를 다하여, 땅속으로 땅 속으로,
한 모금 새암을 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마을, 그 먼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지금 이토록 한 시대와 한 가문과
거기 거멍굴 사람들의 쓰라린 혼불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간절하게 타오르고 있으나
나는 아마도 그 불길이 소진하여 사윌 때가지
충실하게 쓰는 심부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 못한 이야기를
뒤쫓느라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 일을 위하여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좋은,
단 한 사람 만이라도 오래오래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 눈길이 바로 나의 울타리인 것을
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기도와 함께 쓴 '혼불'
'거짓이 아닌 글을 쓰게 하소서'
'모국어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