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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둘레길

바래봉둘레길

바래봉둘레길

바래봉둘레길 은 운봉에서 인월을 가는 지리산둘레길의 또 다른 코스인 바래봉둘레길은 지리산 허브밸리가 있는 용산마을을 지나 소석마을을 경유하여 송흥록 생가가 이는 비전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 2코스와 만나는 길임.

  • 아이콘거리: 29.1Km
  • 아이콘예상시간: 10시간
  • 운봉에서 인월을 가는 지리산둘레길의 또 다른 코스인 바래봉둘레길은 지리산 허브밸리가 있는 용산마을을 지나 소석마을을 경유하여 송흥록 생가가 이는 비전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 2코스와 만나는 길임
  • 남원시에 조성한 허브밸리의 화려한 경관과 축산기술연구소의 초지 위의 소떼와 봄이면 만개하는 바래봉 철쭉의 장관을 만날 수 있어 경관이 뛰어난 길임
  • 4월말에서 5월까지는 허브밸리의 축제 행사장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음
01 탐방로
  1. 바래봉둘레길
  2. 삼산마을
  3. 육모정2km
  4. 5km용산마을
  5. 소석마을6.6km
  6. 9km전촌마을
  7. 비전마을11km
  8. 바래봉둘레길
  • 삼산마을 사진
    삼산마을
    삼산교를 사이에 두고 행정 마을과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마을이다.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삼산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산덕리, 교촌리와 군내면의 동천리 일부와 병합되어 삼산리에 편입되었다.
  • 산덕마을 사진
    산덕마을
    지리산 줄기가 이어져 고리봉(1304m), 세걸산(1198m), 바래봉(1110m)등이 산세를 갖추고 바래봉 밑 정기를 받은 이곳은 옛부터 화기가 감돌고 수려하여 동복 오씨(同福吳氏)가 처음 터를 잡고 산제당을 지어 산의 덕을 받아 마을이 무사태평하기를 기원한데서 산덕(山德)마을로 불렀다고 한다.
  • 용산마을 사진
    용산마을
    확실한 기록의 근거는 없으나 이곳에 먼저 평강 최씨가 터를 잡고 살다가 하나둘씩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고 지금으로부터 230년전 금산 김씨중 한사람이 이곳에 와서 보니 지형이 외룡이 비를 토하는 형국으로 마을앞에 노적봉이 있어 백대나 자손을 정착시킬 수 있다는 좋은 터라 믿고 이곳에 입주하였는데 과연 자손이 번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 허브밸리 사진
    허브밸리
    남원은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이 있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약 1,300여종의 허브가 자생하고 있어 허브의 보고라 할 수 있다.
  • 소석마을 사진
    소석마을
    조선조 숙종때(1674~1720) 평산신씨, 이씨, 범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고 차차 마을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씨, 이씨, 범씨 이들 세 성시들이 처음 터를 잡을때 주위가 큰 소나무에 숲에 둘러 싸인 작은 마을이므로 소나무에 싸인 작은 마을이라 소송리(小松里)로 이름을 지었다가 후에 마을 뒷산에 잔돌이 많아 소석리(小石里)로 개칭하였다.
  • 전촌마을 사진
    전촌마을
    조선조 숙종 년대(1674~1720) 초에 운봉읍 밀양 박씨가 황산대첩비 옆 북천 천변에 낚시를 하다가 대첩비 입구의 소나무 숲이 우거져 아름다운 풍치에 이끌리어 이 곳으로 옮겨 살게된 것이 마을의 시초이다. 그 후로 김씨, 이씨, 강씨가 차례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동편제탯자리(비전마을) 사진
    동편제탯자리(비전마을)
    본래 운봉의 서면(西面) 전촌리 지역을 비전(碑殿)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전촌리(前村里), 옥계리(玉溪里), 소석리(小石里) 일부가 병합되어 화수리(花水里)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시작은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