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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면 행정복지센터

남계리

본래 남원군(南原郡) 백파면(白波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평리(藍坪里), 계산리(鷄山里), 내동리(內洞里) 각 일부와 산동면(山東面) 남평리(藍坪里) 일부를 병합하여 남평과 계산의 이름을 따서 남계리(藍鷄里)라 하고 이백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1일 남원시·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이백면 남계리가 되었다.
남계리에는 계산(鷄山), 남평(藍坪), 산남(山藍) 등이 있다.

남계리 계산(鷄山)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백파면(白波面) 계산리(鷄山里) 지역으로 풍암(楓岩), 닭뫼 또는 계산(鷄山)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평리(藍坪里), 계산리(鷄山里), 내동리(內洞里) 각 일부와 산동면(山東面) 남평리(藍坪里) 일부가 병합되어 남평과 계산의 이름을 따서 남계리(藍鷄里)라 하고 남계리에 편입되었다.

순흥 안씨 11대손 안귀행이 단종때 양성(陽城)현감으로 있을 때 1456년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남원부 백파방 여원치 아래 빈들에 숨어살게(下野寓居) 되었다.

그후 1567년경 부터 안귀행의 현손 안신손의 후손이 번창하여 단일 씨족마을을 형성하여 왔으나 일제 시대부터 연척간의 타성이 10여호 정도가 입주하게 되었다.

본래 이름은 단풍나무가 많아 풍암(楓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마을 앞산 청룡산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고 하여 ´닭뫼´라 불러 오다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계산(鷄山)이라 하였다.

지리적 위치
  • 광주 대구 고속도로가 마을 뒤쪽을 국도 24호선이 마을 앞쪽을 통과하고 있으며, 요천을 경계로 식정동과 산동면이 인접하고 있다.
리 세(면적)
  • 2020년 11월말 현재 61세대 13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총면적 129ha(전 6ha, 답 52ha, 임야 58ha, 기타 13ha)로써 이백면 전체면적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지 형
  • 해발 170여미터의 비산비야(非山非野) 지대로 섬진강 상류인 요천이 앞쪽에 흐르고 있는 비교적 비옥한 농토를 가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중산간 지형으로써 완만한 구릉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의 39%가 산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대부분이 미맥위주의 경종업에 종사하고 있다.
교통 및 통신
  • 국도 24호선과 광주대구 고속도로, 계산∼내동간 농어촌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관광·문화·체육
  • 풍와정(楓窩亭)과 열녀정문이 있다.
  • 남계게이트볼장이 있다.
복지시설
  • 남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소망의 문(노인요양시설), 남계보건진료소가 있다.
남계리 남평(藍坪)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백파면(白波面) 남평리(藍坪里) 지역으로 쪽들 또는 남평(藍坪)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평리(藍坪里), 계산리(鷄山里), 내동리(內洞里) 각 일부와 산동면(山東面) 남평리(藍坪里) 일부가 병합되어 남평과 계산의 이름을 따서 남계리(藍鷄里)라 하고 남평리에 편입되었다.

순흥 안씨 11대손인 백산공 안귀행이 양성현감으로 있을 때 세조의 왕위찬탈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여원치 산하에 은거하여 호학수덕 하였다.
그 증손 안기(安箕)가 현 남평에 정착하여 그 후손이 오늘의 마을을 형성하였다.

조선시대 유학을 숭상하여 송현수(宋玹壽), 안귀행(安貴行), 안경달(安景達), 안재도(安載道)는 중국의 남전 여씨(藍田 呂氏)와 같은 향약(鄕約)의 대가들이라 하여 1766년 정조 23년 2월 도내 사림들의 결의에 따라 이곳에 중국의 남전 여씨의 사적을 본따 사우를 짓고, 남전사(藍田祠) 라 칭하고 마을에 쪽(藍)을 심게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마을 위치가 평평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쪽남´이, ´쪽들´이라 부르다 남평(藍坪)으로 바뀌었다.
전해오는 설에 따르면 남전사(藍田祠)를 보호하기 위하여 전라감사 이서구가 요천제방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지리적 위치
  • 남원시내에서 10Km떨어진 국도변 마을로 교통이 편리하다.
    북쪽으로 산동면, 동쪽으로는 운봉읍이 인접해 있으며, 마을뒤로 요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300년전에 심은 노송이 집단으로 우거져 있다.
리 세(면적)
  • 2020년 11월말 현재 35세대 6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총면적 83ha(전 3ha, 답 24ha, 임야 46ha, 기타 10ha)로써 이백면 전체면적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지 형
  • 남쪽으로 노령산맥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줄기인 장백산이, 북으로는 실봉이 마을 좌우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뒤쪽으로 요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
    • 해발 210여미터로 동부 중산간 평야지대이며 전체면적의 50%가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미맥위주의 경작생활을 하고 있으며, 일부 농가에서 양묘장과 목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교통 및 통신
  • 국도 24호선(광주∼울산)과 군도인 부절선(남계∼산동면 부절)이 통과 하고 있다.
종교시설
  • 남원사랑교회가 있다.
남계리 산남(山藍)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남평리(藍坪里) 지역으로 쪽들 또는 남평(藍坪)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남평리(藍坪里), 계산리(鷄山里), 내동리(內洞里) 각 일부와 산동면(山東面) 남평리(藍坪里) 일부가 병합되어 남평과 계산의 이름을 따서 남계리(藍鷄里)라 하고 남평리에 편입되었다.

요천 강물이 마을을 안고 흐르고 있으며 남북으로 탁트인 넓다란 들에 봄이 오면 쪽이 자생하여 무성히 자라 봄이되면 쪽이 물결치듯 했다 해서 쪽들이라 하였다.

그후 자연마을 단위로 행정구역이 바뀜에 따라 남쪽에 형성된 마을을 남평, 북쪽에 형성된 마을을 산남 이라 칭하게 되었다.

지리적 위치
  • 남원시에서 국도를 따라 함양쪽 10km 지점에 위치한 국도변 마을로 북으로 산동면 서쪽으로 운봉읍이 인접하고 있다.
리 세(면적)
  • 2020년 11월말 현재 55세대 9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총면적 66ha(전 3ha, 답 25ha, 임야 30ha, 기타 8ha)로써 이백면 전체면적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지 형
  • 노령산맥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줄기로 완만한 구릉을 형성하는 해발 220미터의 동부 평야지대이다.
    전체면적의 30%가 산으로 구성되었으며 마을 뒤로 요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거의 대부분이 미맥위주의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교통
  • 군도인 산동 부절선(남계∼산동면 부절)이 마을 뒤쪽을 통과하고 있다.
기 타
  • 마을 중앙의 넓은 곳에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정자목(느티나무)이 마치 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우뚝 서있고 그 곁에는 모정이 있어 주민들의 모임 및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