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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면 행정복지센터

괴립리 석불입상

괴립리 석불입상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 520-1
  • 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28호(1987. 4. 28지정)
  • 시대 : 대통일신라 ~ 고려초
    • 이 불상은 통일신라 말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며, 높이는 머리 부분이 1m, 몸체 부분이 3.5m로 거대한 조각품이다.
    • 조선 정종(1398~1400) 때 이곳에 절을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때 불타 없어지고 불상도 깨어져 머리와 받침만 남았다.
      근래에 주변에서 두 조각으로 갈라진 불상의 몸체를 찾아 받침 위에 다시 세웠다.
    • 불상의 머리 윤곽은 매우 뚜렷하고 얼굴형은 거의 직사각형이다.
      눈은 지긋이 감았으며 귀는 턱까지 내려와 있다.

여원치마애불상

여원치마애불상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양가리 5-3번지
  • 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62호(1998. 11. 25지정)
  • 시대 : 고려시대 추정
    • 여원치 정상 부근 바위에 새긴 이 불상은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불상 옆에는 운봉현감 박귀진(朴貴鎭)이 지은 글을 새겼다.
    • 가슴아래 부분이 아직 땅속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은편이다.
      조각수법이 평면적이어서 역동감은 없지만 넓은 어깨와 큰 귀 또렷한 코는 시원한 느낌을 준다.
    • 예전에는 불상의 보호각에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불상옆의 운봉현감 박귀진이 지은글에 따르면 조선태조 이성계의 꿈에 한 노파가 나타다 이성계가 황산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이 불상은 그 노파에게 감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미륵암 석불입상

미륵암 석불입상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 123
  • 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65호(84. 4. 1지정)
  • 시대 : 신라말기
    • 석불입상높이 2m, 불상높이 1.4m, 석불높이 0.7m
    • 이 불상은 서있는 부처와 그 둘레에 서린 빛을 묘사한 광배를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조선시대에 만들었다.
    • 미륵암은 통일신라 말기 도선스님이 세웠다고 전하는데, 현재 이곳에는 1946년에 세운 연화사(蓮花寺)가 있다.
    • 불상은 상당히 닳아져 얼굴 형태를 분명하게 알아 볼 수 없다.
      목주름과 어깨부분은 비교적 뚜렷하나, 가슴 아래로는 간략하게 조각하였다.
    • 양손은 빠져나가 없고 이를 끼웠던 구멍만 남아 있다.
      광배는 배모양이며 연꽃으로 장식한 받침대는 불상과 분리되어 있다.

초촌리 고분군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 산 6-1
  • 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7호(81. 4. 1지정), 면적 239,010㎡
  • 시대 : 백제시대
    • 이 무덤들은 이백면 초촌리 <자라올> 마을의 동쪽 야산지대와 서쪽 무동산 등선에 위치하고 있다.
    • 1978년 전주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 총 211기의 무덤을 확인하였는데, 대부분이 크게 파괴되어 있다.
      무덤의 규모는 작지만 돌방무덤과 독무덤 등 다양한 형식의 것들이 함께 남아 있다.
    • 이곳에서 나온 유물로는 항아리 등 토기류를 비롯해, 도끼나 칼 등 철제류, 금동제 귀걸이 등이 있다.
    • 이 무덤들은 출토된 유물과 그 구조를 볼 때 6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척문리 산성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
  • 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2호(81. 4. 1지정), 면적 37,011㎡
  • 시대 : 백제시대
    • 이 산성은 남원 서북쪽의 요천강과 이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만나는 지점에 솟아있는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둘레는 567m 가량이다.
    • 성벽은 거의 허물어 졌으며 성터는 뱃전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은 상류 쪽으로 산동 태평리 산성에, 동쪽으로 운봉 장교리 산성에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남원, 북으로는 임실군 오수면과 가깝기 때문에, 백제시대의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 성안에는 우물터 한 곳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백제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기타 비지정 문화재

유형연 효자비 / 부안김씨 열효비ㆍ연안김씨 열효비

유형연 효자비, 부안김씨 열효비ㆍ연안김씨 열효비

유형연 효자비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내동리 232-3]
    • 조선 고종조 문화유씨 집안에 종수라는 사람이 병고에 시달린 모친을 10년간에 걸쳐 산삼을 구해다 드리며 병간호를 하였으며, 가난한 살림에 극진한 효성을 다하여 병중의 어머님을 살렸다하여 그 공을 기리기 위해 마을앞에 효자비를 세웠다.
부안김씨 열효비ㆍ연안김씨 열효비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내동리 232-3]
    • 조선 현종조 문화유씨 가문에 결혼한지 7일만에 남편이 사망하자 그 부인이 같이 죽으려고 목을 매다 발견되어 살게 되었고, 그 후 평생을 수절하며 살았다하여 그 공을 기리기 위해 마을앞에 열녀비를 세웠다.
이씨부인 열녀문

이씨부인 열녀문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남계리 계산마을]
    • 이 정려(旌閭)는 서기 1660년 병오년에 명정한 학생 안희도의 처 이씨이다.
    • 이씨는 본실이 협천이고 어려서부터 예의범절이 특이하였다.
    • 19세에 결혼하여 구고(舅姑)를 효성으로 받들고 부군에게 극진히 공경하여 오다가 부군이 질병에 걸려 지성껏 구원하였으나 병세는 점위독(漸危篤)한지라. 부인이 항시 부군의 허리띠를 가슴에 품고 있었으니 단단히 결사할 뜻을 정했던 것이다.
    • 급기 세상을 당하매 차고 있던 은장도로 두 번이나 자결하려 했으나 저상관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들에게 말하기를 어린아이를 두고 죽는 것이 차마 못할 일이라 전일에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하니까 듣는 이들이 모두 확신하였다.
    • 부군의 시체를 기빈(旣殯)한 뒤에 시매에게 유아가 울고 있으니 데리고 후원에 나가 놀다 오라고 한 사이에 가슴속에 지녔던 허리띠로 자결하였으니 시년이 29세였다.
    • 이때 본도관제사 홍공노후가 본부로 올라가 전보하여 조정에 올리니 임금께서 그집에 정문(旌門)을 세우고 하명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