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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과면 행정복지센터

사율리

본래 남원의 적과면(迪果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상율리(上栗里), 하율리(下栗里)와 덕고면(德古面)의 사곡리(沙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사곡과 상율의 이름을 따서 사율리라 하고 덕과면에 편입되었다.1995년 1월1일 남원시·군이 통폐합되어 남원시 덕과면 사율리가 되었다. 사율리에는 사곡, 율천마을이 있다.

사율리 사곡(沙谷)마을

본래 남원의 덕고면(德古面) 사곡리(沙谷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적과면의 상율리(上栗里), 하율리(下栗里)와 덕고면(德古面)의 사곡리(沙谷里) 일부가 병합되어 사곡과 상율의 이름을 따서 사율리라 하고 사율리에 편입되었다.
1580년경 벽진 이씨 중시조인 충숙공 이상길이 명당을 찾으러 전국을 두루 다니다가 이곳 사곡땅에 이르러 바로 이곳만이 자손이 번창할 곳이라 감탄하고 둘째아들 계를 이곳에 살도록하여 오늘의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마을의 명칭은 1580년경 이상길이 처음 터 잡을때 지세를 풀이하되 ´배가 짐을 가득 싣고 있는 형국\´´ 이라하여 마을 이름을 속칭 ´삽실´´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부근의 작은 마을 새터와 소나무정을 합하여 사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구한말까지 덕고방이라 하였는데 후에 적과방과 병합하여 덕과면이 되고 그때 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설치되어 1954년까지 있다가 이해 공비의 기습공격으로 면청사가 불타 없어지면서 부터 마을의 발전이 침체되고 면청사는 1955년 월평리로 옮겨갔다.
마을 뒤 1.500평의 넓은 동산에는 약 300년쯤 자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여름철 노인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기도 하여 우리고장 명물로 되어 있는데 이 송림(松林)은 이른바 참판림이라 전하는 명소이며 천연기념물 크낙새가 서식하고 송림앞에는 벽진이씨 충숙공 이상길의 영정을 봉안한 충숙공 부조묘인 사당이 세워져 있다.
또 높이 88cm, 두께 43cm 규모의 입석이 있는데 이 자리에 이성계가 쉬면서 개미와 뱀이 많아 호령을 하자 그 뒤부터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돌이라 믿고있다.
총가구수는 48호로 농가 39호, 비농가 9호이며 인구수는 91명 (남자 48명, 여자 44명)이 살고 있으며, 성씨별로는 이씨 47호, 조씨 1호,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
  • 덕과면 소재지로부터 동남쪽 1.9㎞지점에 위치하고 리도 201호선을 따라 덕과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큰동네, 샛터, 달고리 소남정이 있다.
리 세(면적)
  • 전답 총면적 80.7ha로써 덕과면 전체면적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지 형
  •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마을 뒤는 높은 산으로 둘러져 있고 마을앞은 비교적 야산으로 해발 165m, 비산비야(非山非野)로 과수와 낙농의 적지이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미맥위주의 농업을 주로 하고 있어 100% 농림업이며 6농가가 부업으로 낙농업을 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 및 통신
  • 국도 17호선에서 1.0㎞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른 마을로 통하는 도로망이 없어 교통이 불편한 마을이다. 농가 전체에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사율리 율천(栗川)마을

본래 남원의 적과면(迪果面) 하율리(下栗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적과면의 상율리(上栗里), 하율리(下栗里)와 덕고면(德古面)의 사곡리(沙谷里) 일부가 병합되어 사곡과 상율의 이름을 따서 사율리라 하고 사율리에 편입되었다.
조선조 초기의 명 재상 황희를 모신 풍계서원이 이곳 연동에 건립되어 장수 황씨가 처음 정착하게 되었고 그후 어명에 따라 서원이 대강면 풍촌으로 옮겨지자 황씨들도 서원을 따라 대강면으로 이주하였다.
그후 인조왕비를 배출한 청주 한씨 일파가 뒤이어 입주하여 번창하다가 순조 이후에 다른곳으로 이사했으며 다시 장수 황씨가 들어와 김씨, 강씨 순으로 정착하면서 이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중엽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李書九)가 지방을 순회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지형이 "밤이 떨어진 낙률형(落栗形)\" 이라고 감탄하여 ´밤두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알밤이 유달리 컸다고 한다. 그후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밤율(栗)자와 마을앞을 흐르는 시냇물이 있어 내천(川)자를 합하여 율천(栗川)이라 했다. 또는 율촌(栗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은 1930년대 까지는 면내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으나 주민의 근면 성실로써 지금에 와서는 가장 부자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이 국도변에 위치하여 사매면과 경계마을로 항상 깨끗한 환경속에 농사방법등을 과학적으로 운영하여 다른 마을에 앞서가는 마을로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마을앞은 섬진강 상류인 율천천이 흐르고 있고 동편은 평평한 야산으로 싸여 있어 온화한 마을이다.
주요산업은 순농사와 노동이지만 교육수준이 높은 마을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율천천이 사매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국도 17호선이 남원~전주간을 연결하고 율천천에 쌓인 양질의 흰 모래는 이 마을의 상징이자 자랑이며 건축자재로써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총 가구수로는 70호로 농가 62호, 비농가 8호이며, 인구수 145명으로 (남자 78명, 여자 69명)이 살고 있다. 성씨별로는 김씨 22호, 이씨 9호, 강씨 6호, 기타 33호가 거주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
  • 덕과면 소재지로부터 남쪽 1.5㎞지점에 위치하며 국도 17호선과 군도 14호선이 연결되어 율천천을 경계로 인근지역인 사매면과 고정리, 신양리가 접해 연결되어 있다.
리 세(면적)
  • 전답 총면적 79.4ha로써 덕과면 전체면적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지 형
  • 평야부로 경지정리가 되어 벼농사와 시설원예에 유리하며 해발고도 120m의 완만한 야산지대이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미맥위주의 농업을 주로 하고 있어 100% 농림업이며 첨단 시설원예 하우스에서 생산되고 있는 맛좋고 질좋은 새벽딸기는 서울에 있는 유명 백화점과 계약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 및 통신
  • 국도 17호선이 남북으로 통과하면서 남원~전주간 교통을 원활하게 하고 있으며 보절선의 시발점이기도 하여 소재지 다음으로 교통의 중심이 되고 있어 사방으로 원활한 소통이 되고 있다. 농가 전체에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