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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면 행정복지센터

주천면 전설

범바위

범바위는 하주마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으로 산중턱에 있는 바위인데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생돼지를 가지고 가서 범바위옆에 있는 샘물로 깨끗이 씻겨 새돼지 피를 범바위에 뿌리고 돼지를 바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기우제에도 제관이 있는데 제관 선정이 매우 엄격하였다고 한다.

또한 제관이 잘못된 행위를 하면 그 사람은 천벌을 받게되어 죽음까지 당했다고 한다. 범바위는 송치마을과 하주마을을 끼고 있는데 하주마을에서는 길조이지만 송치마을에서는 흉조의 원상이었다고 한다. 범바위 모양이 송치마을을 향해 발을 치켜세우고 먹이를 공격하는 형상을 하고 있고 하주마을에서는 그 옆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송치마을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죽으면 범바위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송치마을 사람들이 범바위를 없애려고 산으로 올라가 범바위를 무너뜨리는 순간 맑은 대낮에 천둥과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기우제를 모시지 않고 가는 길 마저도 없어졌다고 한다. 단지 하주마을에서 보면 멀리 나무들 사이 너머에 흰 부분이 조금 보이는데 그게 범바위 머리부분이라고 한다.

세바위

하주마을 맞은편 논에 세 바위가 있는데 직육면체 모양으로 가로343cm 세로123cm 높이 151cm인 웅대한 바위이다. 원래 세 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두 개는 농경지 사업을 하면서 땅속에 묻혀졌다고 한다. 이 바위에 대해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가설이 있다고 한다.
첫째로 세바위 뒤에 있는 산을 사두(뱀의 머리)산이라고 하는데 세바위를 개구리라고 보고 뱀이 개구리를 공격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산 형상과 관련된 가설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는 세바위를 고인돌로 보는 것이다. 몇 년전에 경지정리사업때 남원문화원에서 의뢰하여 고인돌이라고 확인 되었다.

임신바위

덕촌마을 입구 좌측 산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커다란 네모 모양을 한 두 개의 큰 바위가 있다. 임신을 하지 못한 여자가 아기바위에 돌을 던져 그 돌이 아기바위 위에 얹혀지면 임신을 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뜸물바위

내기마을 뜸물바위에서는 뜸물이 쉬지않고 매일 나왔다고 한다. 이 뜸물로 목욕을 하면 나환자가 낫는다는 영특한 물이었다. 어느 날 욕심많은 아낙네가 뜸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쌀이 많이 들어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뜸물이 나오는 구멍을 장대로 쑤셨다. 그랬더니 그 후로는 뜸물은커녕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호기리석장승

신기마을에는 석장승이 하나 있는데 이 석장승은 미륵석불이라고 하여 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석불은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남원시 노암동에 살았던 김양근의 일족들이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오는데, 김양근의 6대조인 김기수가 조선조 정조 22년(1798)에 세상을 떠난 지 3일만에 다시 환생하여 꿈속에서 본 노인을 찾다가 땅속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어떤 노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장롱속에 넣었으니 찾아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자손들이 애통해 하다가 환생한 반가움과 이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장롱 속을 찾아보았으나 편지는 나오지 않았다. 한편, 환생한 김양근은 정신이 들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토막 꿈같기도 하고 현실 같기도 하여 자손들에게 자기가 그동안 겪은 일을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내가 죽자 한 노인이 길을 인도하여 따라가는데 한눈도팔지 못하도록 엄하게 단속하며 만일 무의식 중에 곁눈질이라도 할라치면 심한 매질까지 해 가며 똑바로 앞만 바라보며 가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옆이나 뒤를 전혀 살피지못한 채 한참을 가노라니 웬 대궐같은 집이 나타나고 그 속에 많은 문서들이 들어차 있는데 서류를 맡아보는 이가 일일이 문서를 살피며 조사를 하더니 아직 들어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왔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 길로 다시 나가되, 처음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눈 팔지 말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고 나가야 하지 만일 곁눈질이라도 한다면 그냥 살려보내지 않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더구나. 그래서 앞만 바라보고 다시 나오는데 앞에 강물이 나타나므로 길이 막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편지 한 통을 주면서 빨리 가지고 가라며, 또 빨리 가지 않는다고 매질을 하므로 정신없이 헤매다가 물위에 걸쳐 있는 겨릅대를 딛고 가다가 그만 물 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지. 그 순간 정신이번쩍 들어 눈을 떠보니 그때가 바로 내가 환생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후 남원고을 방방곡곡을 헤매며 저승에서 본 그 노인을 찾아 다니다가 지금의 신기리에서 논 속에 묻혀 있던 미륵석불을 발견하여 캐냈는데, 이 미륵석불이 바로 그 노인임을 확인하고 크게 감사하며 매년 칠월 칠석날, 이 불을 찾아와 제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자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제사 온 뒤로 가세가 늘어 후대에 원의 부호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장승은 패랭이를 쓴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