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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면 행정복지센터

호경리

본래 남원군(南原郡) 하원천면(下元川面) 내촌리(內村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내촌리(內村里), 호정리(湖亭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호경리(湖景里)라 하고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 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가 되었다.

호경리 호경(湖景)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하원천면(下元川面) 내촌리(內村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내촌리(內村里), 호정리(湖亭里) 각 일부가 병합되어 호정의 호(湖) 내촌의 풍광이 아름답다하여 빛 경(景)을 써서 호경리(湖景里)라 하고 호경리에 편입되었다.
1680년경에 경주 정씨(慶州鄭氏)가 생활의 터전을 찾다가 산세가 수려하며 물이 깨끗하고 맑은 이 곳에 머물며 살았다. 그 후 연안 김씨(延安金氏) 풍천 노씨(豊川盧氏)와 밀양 박씨(密陽朴氏) 등이 들어와 여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였다.
본래 마을 이름은 내촌(內村)이라 하였는데 이는 산속에 마을이 있었기때문이다. 그 후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육모정과 구룡계곡이 주위에 있어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 하여 호정리(湖亭里)의 호(湖)와 빛 경(景)을 써 호경리(湖景里)로 바꾸었다.
주변의 농토는 땅이 기름지고 원천천의 풍부한 물로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곳이며, 부근 산에서 산채, 약초, 버섯 등을 채취하여 소득이 많다. 1969년 12월 29일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1971년 5월 25일 주천면 호경리 육모정에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건립되었다.
마을 입구에는 짐대당산이라 부르는 솟대와 누석단이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 마을의 형국이 배의 모양과 같아서 배의 움직임을 막기위해 마을 입구에 5m의 누석단(원형돌단)을 쌓고, 솟대(짐대)를 세워 돛대 역할을 하게 했다. 솟대위에는 오리 3마리를 앉혀놓아 멀리서 호경마을로 복을 물어와(호경에 알을 낳으니) 부자마을로 기원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마을앞에 있는 작살봉이 화산(火山)이어서 마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는 화를 당하므로 매년 2월 초순에 병에 물을 담아 작살봉 정상에 묻어 화재를 방비했다고 한다. 이에따라 매년 음력 2월 초하루날에 마을 주민들이 짐대당산앞에 모여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농악놀이를 즐기는 민속행사가 지금도 전래되고 있다.
이밖에 마을 입구 들가운데 있는 조산(造山)은 큰 돌로 둥그렇게 쌓은 석산(石山;높이 6m 둘레50m)으로 근래 도로개설로 인하여 돌이 훼손되어 적은 돌산으로 변형되었으나, 이 마을의 인재와 재물이 흘러나가는 것을 예방하고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인 상징물로서 마을의 부흥을 꾀한 신앙심으로 만들어졌다. 최근에 세워진 3.5m의 높이에 머리에는 벙거지를 쓰고 두툼한 눈과 넓적한 코 가슴에는 남악대장군(南岳大將軍)이라고 새겨있는 남악대장군이 있는데 가슴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산수풍을 나타내는 그림과 상형문자가 새겨있는데 지리산을 지키는 수문장의 상징으로 건립된 것이다.

지리적 위치
  • 지리산국립공원 입구이며 1986년도 육모정-정령치-성삼재-구례와 산내 뱀사골 등으로 통하는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이 개설되었고, 국립공원1호인 지리산관광도로의 관문이며 육모정 바로 밑에 위치하고 있다.
리 세(면적)
  • 1997년 6월말 총면적은 429.2ha로 주천면 전체면적의 8%를 차지하며, 전답별 비율은 전이 4.6ha로 농경지의 13%이며, 답은 31.3ha로 농경지의 87%이다. 임야는 370.2ha로 총면적의 86%,기타가 10.2ha로 총면적의 2.4%이다. 2010년 기준 가구는 59호로 주천면 전체의 5.3%이고 인구는 123명(남 63명, 여 60명)으로 주천면 전체의 5%이다.
지 형
  • 해발 250m의 중산간지대로 산세가 수려하고 마을앞으로 흐르는 맑은 물은 천혜의 관광자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마을앞으로 펼쳐져 있는 평야는 농사짓기에 편리하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벼농사가 주산업이며 서비스업 종사농가가 35%나 차지하고 있으며, 백숙, 토종닭 등의 음식이 알려져 있다.
관광 문화 체육

[육모정(六茅亭)과 원동향약(源洞鄕約)]

  • 1572년 지역 어른들이 모여 서로 존중하며 의리와 신의성실로 용호상(지금의 구룡계곡의 구곡과 구곡사이의 경치 좋은 곳으로 구룡계곡이라 한다)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두터운 신분을 새기며 옛날과 현재를 논하고 도의지심과 상부상조함을 더욱 돈독히 하고자 하나의 조직을 갖추어 이를 원동계(源洞鄕約)라 하고 그 목적을 예의와 의리와 도덕에 두고 수십가지의 규약을 정하여 지역 주민들을 선도하니 이는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와 그의 선배인 여남전선생의 가르침을 이은 것이다. 그 뒤 1638년에는 이 지역의 선비 정훈, 조경남, 정사진, 유기명, 박유 등 많은 인사들이 계를 수정하여 중국에서 주희선생의 초상화를 들여와 원천동 사당에 봉안하고 선생들의 가르침을 기리며 후학을 양성하고 매년 춘추로 제사하는 등 계원상호간의 우의를 다져왔다.
  • 그 후 관(남원부사)에서도 적극협력 참가하여 계가 번창하고 후배양성에 힘을 기울이니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원동향약은 남원 전역에 보급되어 상부상조 권선징악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 원동향약은 420여년을 이어온 국내 가장 전통있는 향약으로 육성계승되는 동안 계원들의 모임과 후학 양성소인 용호정과 육모정이 있었으니 특히 육모정은 그 규모의 대소간에 정각 아래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남원지역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곳이었으나 1961년 수해로 유실되었으나 원동계의 향약이 문화재로 지정 국가의 보호를 받게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관광지에 유서깊은 육모정을 복원하자는 뜻이 모아져 1997년 남원시의 지원으로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춘향묘(春香墓)]

  • 우리의 고전문학 [춘향전]의 주인공인 춘향의 묘로 1995년에 정비되었다.

[구룡계곡(九龍溪谷)]

  • 용호구곡, 구룡폭포라고도 하며 음력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잡아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데서 구룡계곡이라 불리워졌다. 구룡계곡은 실제 12곡이나 있는데 수를 나타내는 숫자 가운데 9가 제일 큰 수로 치기 때문에 9곡으로 사용되었다.
  • 제1곡(松瀝洞) : 지리산국립공원 매표소에 조금 못미치고 있는 폭포로 흔히 약수터로 불린다.
  • 제2곡(玉龍湫) : 옥녀봉 밑 계곡으로 9폭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옥용추를육모정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른다.
  • 제3곡(鶴捿岩) : 학들이 이곳에서 물고리를 잡아 먹는다 해서 학서암이라 했다.
  • 제4곡(瑞岩) :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건너편 작은 바위는 중이 끓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같다하여 서암이라 했다.
  • 제5곡(隱仙屛) : 유선대(遊仙臺)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놀면서 속세의 인간들에게 띄지 않기 위하여 병풍을 치고 놀았다하여 은선병이라고도 한다.
  • 제6곡(砥柱臺) : 계곡 둘레에 옹기종기 솟은 봉우리 가운데 제일 뾰족한 봉우리가 계 곡물을 내지르는 듯하여 그 봉우리 이름을 지주대라 했다.
  • 제7곡(飛瀑洞) : 지주대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층층암벽을 타고 포말려 비폭동이라했다.
  • 제8곡(敬天壁) :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가운데 우뚝서있고 바위 가운데 가 대문처럼 뚫려 물이 그 곳을 통과한다해서 석문추라 하는데 양편 절벽의 경치가 하늘에 닿았다해서 경천벽이라 했다.
  • 제9곡(交龍潭) : 용 두 마리가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서로 꿈틀거린듯하므로 교룡담이라 했다.
공공기관
  • 국립공원지리산북부관리사무소 구룡분소, 국립공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