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건너간 일본 최고의 도자기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임진왜란의 끝 무렵인 정유재란(1597)당시 사쓰마(사摩)의 번주(藩主) 시마즈 요시 히로(島솔義弘)는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였다. 당시 남원은 전라도의 문화 중심지이자 조선 도자기의 생산지로서 이 름난 고장이었다. 따라서 이곳 전투에 참가했던 시마즈 요시히로는 주위의 도자기를 눈여겨보았다.
그 무렵 일본에 서는 차도(茶道)가 유행하여, 조선에서는 일상 생활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릇들이 일본에서는 귀중한 보물로 여겨졌다. 이런까닭에 시마즈 요시히로는 돌아가면서 남원 출신의 박평의(朴平意)등 남녀도공(陶工)을 강제로 끌고 갔다.
이들은 처음 구시키노(구木野)에 살다가 다시 가고시마(역야島) 인긴의 나와시로 가와(고代川)로 옮겼다 그리고 고 국에서 익힌 도예 기술을 더욱 갈고 닦아 민족의 빛갈이 살아 있는 백자(白磁)를 재현하려 노력한다. 그 결과 "사쓰 마 도자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음악탑 ( 音樂塔 )
01오늘이 오늘이소서
"오늘이 오늘이소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중엽까지 우리 조상들이 생활의 기쁨을 노해한 곡이다. 이를 1610년에 장악원(掌樂院) 악사 인 양덕수(梁德壽)가 남원에 거주하면서 채보(採譜)하여 자신의 저서 [양금신보(梁琴新譜)에 실어 놓은 것이다. [양금신보]는 임진왜 란 이후 한국 음악사 연구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음악 자료 중의 하나인데, 여기에 수록된 "오늘이 오늘이소서"란 곡은 정유재란 (15 97)때에 남원에서 일본으로 꿀려간 도공과 그 후예들이400여 년 지난 지금까지도 고향을 그리는 노래로 부르고 있 다고 한다.
이에 1988년 7월 26일에 광한루원 완월정에서 이들 고공의 후예들에 의해서 그들이 부르던 노래를 고향 에 되돌려주는 귀향음악회가 열렸으며, 노래의 고향인 남원에 되돌져두는 전수식 또한 가졌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의의와 가치를 제조명하고자 1995년에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이 만인의총 (萬人義塚)앞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