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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면 행정복지센터

청계리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물이 맑으므로 청계(淸溪)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고인리(高印里)를 병합하여 청계리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군이 통합되면서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가 되었다.

1985년을 전후하여 아영면 면사무소가 설치 되었는데 과거 운봉군 북상면의 면사무소가 있었던 갈계리에서 이전하여 면 소재지가 되었다.
청계리에는 외지(外至), 광평(廣坪), 청계(淸溪), 고인(高印) 등이 있다.

청계마을 뒷산이 모산(母山)인데 이 산은 아기들이 어머니를 받들어 모시는 유아봉모형국(乳兒奉母形局)이라고 한다.
풍수의 형국을 따라 이 모산을 중심으로 어머니를 받들어 모시는 유아에 해당하는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구진애기, 신진애기, 밧진애기, 모대기 였다고 한다.
그 중 모대기는 없어지고 지금의 구지, 신지, 외지마을이 나머지 세 아기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이러한 지리의 풍수설에 따라 과거 이 지역을 모산현(母山縣)이라 했다고 한다.

청계리 외지(外至)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청계리(淸溪里)지역으로 밧진애기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고인리(高印里)와 병합되어 청계리에 편입되었다.

풍수설에 의하여 명당이라 전해 온곳으로 리590년경 송씨 (宋氏)일가가 피난차 이곳을 지나다가 터를 잡고 씨족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그후 (邢氏)오(吳)·정씨(丁)등이 이주,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뒷산이 모산(母山)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산으로 북쪽에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받들어 모신다는 유아봉모(乳兒奉母)의 형국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모시는 여러 아이중의 아기자리가 이 마을에 해당된다 믿고 마을 이름을 밖에 있는 아기의 뜻으로 [밧진애기]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밧진애기]를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외지리(外至里)라 쓰게 되었다.
또 일설에는 밭이 흔한 곳인지라 [밭진애기]라 했다고도 하고, [밧진애기]는 사실상 [밧진내기]로 발음이 되므로 밭을 지나가서, 즉 밭을 건너 마을이 있었으므로 [밭지내기]가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마을이 나무혈이어서 날들에서 나무를 베면 액운이 온다는 설이 있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로부터 서남쪽으로 600m 위치한 시·군도 29번선과 인접한 마을이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56.6 ha로 아영면 면적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 비율은 전4.2ha 7.4%, 농경지의 답 26,2ha 농경지의 86.2%, 임야 12ha 총면적의 21.2%, 기타 14.2ha 총면적의 25.2%이다.
    가구는 29호로 아영면 전체의 2.9%이고, 인구는 95명으로 남자 50명, 여자 45명(아영면 전체의 2.9%)이다.
지 형
  • 구릉지인 반월산을 등지고 평탄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농업의 여건이 좋은 마을이며, 마을 뒤로 야산이 많아 경지로 개간되었다.
    지리여건상 개울은 없으며 해발 450m이다.
주요노선
  • 시 . 군도 29번선이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논이 많고 야산이 풍부하여 논농사 위주와 더불어 밭농사도 알맞게 발달된 마을이다.
학교시설
  • 마을옆에 아영초등학교가 있다.
기타
  • 마을모정 1 동 , 마을회관 1동이 들어서 있다
청계리 광평(廣坪)마을

마을위치가 본면의 남부와 북부의 중앙지이면서 동면(東面)의 북부(유곡리, 건지리)지역과 통하는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점이다.
1930년경 김해 김씨(金海金氏) 2가구가 이곳에 주막을 짓고 상업을 하게 된 것이 최초의 마을 형성유래다.
그 후 각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어 정착하면서 오늘의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처음에는 청계마을에 부속했으나, 1969년 행정분리 개편때 따로 독립었고 1985년에는 갈계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옮겨와 아영면의 면소재지가 되었다.

아영면의 4대 하천, 즉 청계천(淸溪川)·의지천(蟻池川)·유곡천(酉谷川)·신지천(新至川)이 마을앞에서 합류되며 주위의 평야가 넓으므로 [너더리(넓은 들)]이라 불러왔다.
1969년 행정분리 개편때 마을은 독립하였으나 마을 이름이 읽기나 듣기에 어색하다하여 1975년 최정주(崔正柱)면장의 추진으로 마을 개발위원회의 결의를 거쳐 이름을 광평(廣坪)으로 바꾸었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 마을이며, 시·군도 29번선이 마을을 관통하고 이곳을 지나 함양군 백전면과 연결된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50.4 ha로 아영면 면적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비율은 전 3.6ha 농경지의 21.9%, 답 12,8ha 농경지의 78.1%, 임야 10ha 총면적의 19.8%, 기타 24ha 총면적의 47.8%이다.
    가구는 67호로 아영면 전체의 6.7%이고, 인구는 204명으로 남자 108명, 여자 96명(아영면 전체의 3.8%)이다.
지 형
  • 사방에 넓은 평야가 있으며 앞으로는 풍천이 흐르고 마을을 가로질러 청계천이 흐르고 있는 산간부 평지다.
    해발 450m이다.
주요노선
  • 시 . 군도 29번선이 마을을 관통하여 함양군 백전면과 연결된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주민 대다수가 논농사 위주지만 면소재지인 만큼 일부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너더리 돼지고기와 애저요리가 유명하다.
복지시설
  • 1984년에 준공된 아영면 복지회관이 있다.
공공기관
  • 아영우체국, 아영면사무소, 아영파출소, 아영면 농촌지도상담소, 아영면 중대본부
교육기관
  • 청계원광어린이집, 아영중학교, 아영초등학교
금융기관
  • 아영농협, 아영신협, 축협아영지소
종교시설
  • 1956년 10월 설립된 대한예수교 장로회 종파소속 아영교회
  • 1993년 1월 설립된 한국기독교 장로회 종파소속인 중앙교회
  • 1958년 8월 8일 설립된 원불교 청계교당이 소재지내에 있다.
기타
  • 아영면 소재지로써 많은 상가가 들어서고 있는 추세다.
  • 농기계수리 대리점 2개가 소재지내에 있다.
청계리 청계(淸溪)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물이 맑으므로 청계(淸溪)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고인리(高印里)를 병합하여 청계리라 하였다.

마을 뒷산이 모산(母山)인데 모산의 쪽계곡은 아흔아흡 골짝으로 골짝마다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계곡의 물이 맑고 시원하여 웬만한 피부병은 이 물에 목욕하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여 옛날부터 인근 함양과 운봉 등 각지에서 찾아와 여름에 목욕을 하였고, 그 물로 음식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이로인해 이 계곡을 탕실이라 부르며 계곡의 맑은 물이 마을의 중앙을 흐르고 있기에 청계동(淸溪洞)이라 했다.

이곳은 신라대 모산현의 현청(縣廳)이 있었던 곳으로 관원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그 후손들은 없고 500년전에 파평 윤씨(坡平尹氏)를 비롯해 김씨와 맹씨(孟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마을이 자라형국이라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는 것을 금기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다리를 놓으면 자라가 다리를 건너가 마을 복도 함께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로부터 서쪽으로 청계천을 따라 500m 지점에 소재
리 세(면적)
  • 총면적은 187.4ha로 아영면 면적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 비율은 전 4.9ha 농경지의 18.9%, 답 21ha 농경지의 81.1%, 임야 147ha 총면적의 78.4%, 기타 14.5ha 총면적의 7.8%이다.
    가구는 31호로 아영면 전체의 3.1%이고, 인구는 72명으로 남자39명, 여자 33명(아영면 전체의 2.2%)이다.
지 형
  • 마을뒷산은 아기들이 어머니를 받들어모시는 형국으로 마을 주위를 산들이 감싸고 있으며 마을을 가로질러 깨끗한 청계천이 흐르고 있는 지역으로 해발 450m이다.
주요노선
  • 88 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마을주위에 지리적 여건상 논이 드물어 일찍부터 과학적인 영농 방식을 도입하여 고추나, 배추, 고랭지 감자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이밖에 유실수 재배에도 힘쓰고 있다.
관광 문화 체육
  • 사적지 및 문화재
    • 청계리 성지 :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공방 요새지로써 성지 둘레는 166.1m 이다.
기 타
  • 마을 입구에 상고시대의 [고인돌]이 있다.
  • 22주의 느티나무가 정자숲을 이루고 있다.
  • 마을회관1개, 모정1개가 있다.
청계리 고인(高印)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고인(高引)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청계리에 병합되었다.

마을 뒷산이 아기들이 어머니를 받들어 모시는 형국을 가졌다는 유아봉모(乳兒奉母)산의 이름을 모산(母山)이 있어 신라때 이지역을 모산현(母山懸)이라 했는데 그때 고인이라는 장수가 관장하는 모산현 소재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가 없고 현재는 1200년경에 정착하였다는 동복 오씨(同福吳氏)를 비롯한 맹씨(孟氏), 형씨(邢氏), 서씨(徐氏)들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3기의 지석묘(支石墓)가 있는데 유구(遺構)에 의하면 갈계리, 봉대리와 같은 시기인 청동기시대 이전의 것으로 그 시기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그 연대는 대략 기원전 1,000년 안팎(B.C 1300∼700년)으로 보고 있다.
이로 미루어 마을 사람들은 [고인(高印)이란 명칭을 상고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믿고 있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에서 서쪽으로 약 400m 지점에 위치하며, 마을 바로 뒤로 '88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63.5 ha로 아영면 면적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비율은 전 4.3ha 농경지의 19.2%, 답 18ha 농경지의 80.8%, 임야 28ha 총면적의 44%, 기타 13.2ha 총면적의 21%이다.
    가구는 24호로 아영면 전체의 2.4%이고, 인구는 84명으로 남자 46명, 여자38명(아영면 전체의 2.5%)이다.
지 형
  • 시리봉 게곡의 맑은 물이 청계마을을 경유하여 고인에 이른다.
    유아봉모의 마을 풍수로 청게리 일대에 모산(母山)인 누운어미와 아이팔, 고작(두더기, 두덕강변), 아다리 등의 지명과 함께 마을 뒷산 명당날 밑에 모산혈의 명당이 있다.
    해발 450m이다.
주요노선
  • 88 고속도로가 마을 뒤를 통과하고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농업이 주업이며 요즘은 고소득 작물로써 배추, 감자등을 재배하고 있다.
관광 문화 체육
  • 남방식 고인돌(받침돌)이 있다.
  • 고인 체육 공원이 마을 앞에 있다.
기 타
  • 모정 1개, 마을회관 1개, 마을창고 1개가 있다.
  • 천년 가까운 노송을 비롯하여 느티나무 4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