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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면 행정복지센터

아곡리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아용부곡(阿容部曲)이 있어 아실 또는 아요곡, 아곡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아곡(阿谷), 점촌(店村),당동(唐洞) 일부를 병합하여 아곡리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 되었다.
1995년 남원시 군이 통합되면서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가 되었다.
아곡리에는 아곡, 당동 등이 있다.
통일신라 초기 달성 서씨 일가가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서씨들이 타지방으로 이주하고 재령이씨, 함양오씨 등이 정착하면서 부터 마을앞 평지에 경지를 일구어 농사에 전력하여 마을이 날로 발전 부유해지니, 평강 채씨 등 여러씨족들이 다투어 이주하여 번창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데 남북국시대때 연안 이씨들이 처음 터를 잡았다는 설도 있다.
아영면에서 제일먼저 형성된 마을로 전해지고 있는 이 마을은 위치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인 [아막성]의 성역이라 하여 [아실]이라 했는데 한자로 옮기면서 [아곡(阿谷)이되었다.
과거 운봉군 북상면 면소재지였다.

지리적 위치
  • 면 소재지(광평)로부터 서남방향으로 약 7km지점에 위치한 산간마을로 해발 450m의 고냉지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207.2 ha로 아영면 면적의 5.8%를 점하며 전답비율은 전 18.7ha로 농경지의 25.8 %, 답이 53,3ha로 농경지의 74.2 %, 임야 124ha로 총면적의 59.8%, 기타.2ha 총면적의 5.5%이다.
    가구는 54호로 아영면 전체의 5.4%이고, 인구는 167명으로 남자 77명, 여자 90명(아영면 전체의 5.1%)이다.
지 형
  • 마을 앞산에는 베틀바위(奇岩)가 베를 짜는 형상으로 마을을 굽어보고 있으며 그것으로 부터 200m지점에 웃돗치 (鳴石峙)가 있다.
    마을 뒷쪽으로 경사가 심한 산이 있으며, 산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하다.
    하천은 없고 개울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해발 450m이다.
주요 산업 및 토산물
  • 이 마을앞 넓은 들은 주업이 벼농사를 하기에 좋은 여건이며, 실제 주민의 95%이상이 논농사에 종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랭지 감자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 사적지 및 문화재
    • 봉 암 대 : 삼국시대때 문인들이 모여서 서화를 즐기던 곳으로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 방 고 대 : 과거에 방을 붙여 발표를 하는 곳으로 '방'을 기다리는 곳이란 뜻이다.
    • 아영고지 : 삼국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4층 석탑이 있었으나 일본인이 도굴해가고 아영비지는 최근까지 남아 있다가 1968년 3월경 도굴꾼이 훔쳐갔다.
      1968년 6월 마을유지 이인호씨가 사제를 들여 아영고지 비문을 자필로 새겨 세웠다.
    • 탑 거 리 : 1m정도의 아주 작은 탑이 있던 자리
    • 수양전진계 기적비 : 선함을 베푼다는 마을사람들의 심정을 엿볼수 있는 비석으로 50년전에 세워졌다.
    • 기 암 대 : 옥녀직금, 검도암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하늘나라에서 음력 8.15일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베짜기 시합을 했던 곳이라 하며, 아들을 못 낳는 여자 가 이 바위에서 머리를 빗고 내 려오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베틀바위라고도 한다.
종교시설
  •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인 아곡교회와 기암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기타
  • 복지시설 1개, 마을회관 1개, 공동창고 1개, 모정 1개
아곡리 당동(唐洞)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아용부곡(阿容部曲) 지역으로 땅골 또는 당골, 당동(唐洞)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아곡(阿谷), 점촌(店村), 당동(唐洞) 일부가 병합되 아곡리에 편입되었다.
통일신라 초기 당나라 사람들이 일시 거주했다고 전해오나 실제 마을이 형성되기는 고려 명종조(1170년 ∼1197년)에 풍산 유씨 등이 정착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그 후 전주 이씨, 경주 김씨 등 여러 성씨 들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이름이 당동(唐洞)된 유래가 전해오는데, 이 마을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래와 북성이래(일명 두고개)와 장삼이등이 있는데 그 당시는 통칭 복성동이라 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새복이재와 복성이재에는 토성 터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 엣날에는 점을 쳐 전쟁을 했다는데 이곳에서 점을 쳤다고하여 복성동이라했으며 그 후 당군(唐軍)이 신라군에 ?i겨 간후 병령도 철수되고 마을도 없어졌는데 임진난때 황씨 한 분이 들어와 살다떠나고 그 후 유씨 한분이 피난처로 들어와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장삼이 입구 말바우에는 대서로 복성동이라고 각자 되어 있다.
) 또 삼국시대 나 당연합군이 백제를 멸하고 당군(唐軍)이 머무는 동안 마을 건너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았다 하여 '당골'이라 하다가 후에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당골]을 그대로 옮겨 당동(唐洞)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앞에 있는 관람(關攬)이란 곳에는 병영(兵營)과 성(城)을 관장하는 관청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터에서는 지금도 옛 기와의 조각과 사금파리가 출토된다.
마을 북쪽으로 도자기를 굽던 점촌(店村)이 있었는데 동면 자래리 연실(蓮室)로 옮겨 갔다.

지리적 위치
  •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km지점에 있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161.5 ha로 아영면 면적의 4.5%를 점하며 전답비율은 전이 11.7ha로 농경지의 29.6%, 답은 27.7ha 농경지의 70,4 % 임야 113 ha 총면적의 69.9 %, 기타 9.8ha로 총면적의 6.1%이다.
    가구는 24호로 아영면 전체의 2.4%이고 인구는 68명으로 남자 31명, 여자 37명이다.
지 형
  • 서리봉에서 흘러내린 골짜기 물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마을주위를 감싼 원만한 산들이 둘러싸여 있고 마을은 깊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500m며 풍수적으로 와우형(臥牛形)이다.
주요노선
  • 88고속도로가 마을앞을 통과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미작이 주산업이고 최근에 이르러 고랭지 채소와 고추, 밤, 감도 약간 생산하고 있다.
관광 문화 체육
  • 지리산 휴게소 : 1984년 6월에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됨과 동시에 휴게소가 설치되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음.
기타
  • 마을입구에 수백년 묵은 정자나무(느티나무) 52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음. 마을회관 1개, 마을공동창고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