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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면 행정복지센터

봉대리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봉대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봉대리(奉大里), 임곡리(林谷里)와 당동리(唐洞里) 일부를 병합하여 봉대리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 군이 통합되면서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가 되었다.

봉대리 봉대(奉大)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봉대(奉大, 蓬臺, 鳳臺)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봉대리(奉大里), 임곡리(林谷里)와 당동리(唐洞里) 일부가 병합되어 봉대리에 편입되었다.

이 마을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써 북으로 아막성, 남으로 가산상성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장수군으로 통하는 옛날 군수요로로써 신라군의 거점지였던 곳으로 보인다.

고려 의종무렵(1170년) 청도 김씨가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고, 서산 정씨를 비롯하여 경주 이씨 등이 이주하여 인근에 4개 마을, 하촌(수도촌), 중촌(쑥대, 쑥띄) 상촌(지장동), 숲실(林谷) 등을 이루고 살아온 큰 마을이었지만 현재는 중촌과 숲실만 남아 있다.

봉대의 원래 이름은 중촌의 옛이름인 쑥대(일명 쑥띄)였는데 이를 한자로 [蓬臺] 또는 [蓬帶]로 표기하다가, 1750년부터 마을의 형국이 새(鳥)의 형국인지라 풍수지리설에 따라 새 봉(鳳)자로 바꾸어 [봉대(鳳臺)]로 고쳤는데 조선조 중엽까지 마을 뒷산에 봉계사(鳳溪寺))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1941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쓰기에 편리하도록 받들 봉(奉), 큰 대(大)으로 고쳐 봉대(奉大)로 했다고 한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 서남방으로 약 6km지점에 위치한 산촌이지만 비교적 마을 위치가 평탄하고 주위에 임야가 적고 황량하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338.3 ha로 아영면 면적의 9.5%를 점하며 전답비율은 전 28ha 농경지의 38.3%, 답 45,1ha 농경지의 61.7 % 임야는 250 ha 총면적의 73.8 %, 기타 15.2ha 총면적의 4.7%이다.
    가구는 60호로 아영면 전체의 6%이고 인구는 195명으로 남자 98명, 여자 97명(아영면 전체의 6%)이다.
지 형
  • 마을의 지형은 새(鳥)의 형국으로 해발 772m의 시리봉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 숲말을 지나 봉대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 마을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북쪽에 있는 아막성과 남쪽에 있는 가산산성의 중간에 위치하며, 새맥이재나 모래재를 넘어 장수군과 통하는 옛날의 군사기지였다.
    조선조 중엽까지 고총고분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신라의 주요 거점지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마을은 야산을 개간하여 약초, 고랭지 감자, 배추 등을 재배하며 마을 앞으로 봉대천이 흐르고 있다.
    해발 450m이다.
주요노선
  • 88 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로질러 통과하고 있음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벼농사가 주산업이고 야산을 개간하여 약초재배, 고랭지 채소 등으로 소득을 올린다.
관광 문화 체육
  • 풍산유씨 효열기념비 : 1980년 11월에 아영면민의 성금으로 건립
  • 당산제 :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 당산제가 열린다.
  • 서산정씨 효열비 : 정가, 정육륭 두효자의 효행을 기림.
  • 열락재 : 청도김씨 재실로 후에 서당으로 활용하였다.
  • 마을 회관 1개, 공동창고 1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