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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면 행정복지센터

아막성(阿莫成)

  • 지정 : 도 기념물 제38호(1977.12.31)
  • 소재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 흥부1길 48-54
  • 특징 : 아영면 성리마을에서 마을회관을 지나 소로의 우측으로 가면 흥부각이 나온다.
    여기에서 바로 아막성까지 오르는 소로가 나있다.
    아막성은 현재 북문지만이 복원을 해놓은 상태이며 동,서,남문지는 많이 허물어져 있으나 군데군데 정연한 성벽모습을 갖춘 곳도 있다.
  • 중군마을-임도-서능-덕두봉(헬기장)-북능-용계마을-신인월/10.5km/4시간30분

또한 북문지 바로 안쪽으로는 운성암이라는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운성암 뒤편으로는 석조의 축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확실한 구조는 알 수가 없다.
유물은 백제계 호형토기의 구연부편을 비롯하여 집선문의 동체부편, 개배편, 기와편등 이 있고 석부도 1점 수습되었다.
주변으로도 상당한 양의 유물이 지표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고분군(古墳群)

고분군

  • 지정 : 도기념물 제10호(1973.6.23)
  • 소재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
  • 특징 : 아영면 소재지에서 두락리 쪽으로 조금 벗어나면 도로에서 우측으로 풍천을 가로지는 이동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 곳에서 약 500여m를 기다보면 우측으로 낮은 야산이 하나 보이는데 이곳이 두락리 고분군이다.
    본교 박물관에서 1989 년에 발굴조사를 실시한바 있으며, 1973년도에 전북특별자치도 사 적 10호로 지정되었다.

아영면과 인월면의 경계부에 속한 야산을 중심으로 대략 27기의 고분이 대형의 봉분을 이루며 존재하며 일부 고분은 인월면에 속하는 것도 있다.
현재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각각의 봉분 근처에는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지리적 위치는 북위 35°30′15.1″, 동경 127°37′25.2″이다.

비지정문화재

비지정문화재에 관한 표
문화재 및 효열시설물 현황 건립배경 사진
박문식 효자비
  • 건립연대
    1779년 (기해4월)
  • 유형 및 구조
    정려비각, 목조와가 35×10×110
ㆍ기념비에 새겨진 자는 대화, 호는 간포, 관은 함양박씨 임술년 8월에 출 생하여 생부 송암이 숙환으로 8년동안 병석에 누워 있을때 최선을 다해 부를 모셨으며 2년후 양부 충정공에게도 효 를 다하여 성심 성의껏 양부를 다 하 였으며, 임종 시 양부의 변을 맛보면 서 봉양한 사실을 후세 사람들에게 본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철종 경술년에 세인 천거하여 조정에서 직오증승지사증군수연석진사주대사인 을 증직하여 문중에서 비 건립 박문식 효자비
서유경
서한보
효자각
  • 건립연대
    1815년(을해 4월)
  • 건립주체
    문중(조정)
  • 유형 및 구조
    정려각목조와가
ㆍ서유경은 구계 공형의 18세손으로 그의 미덕이 어버이를 섬길때 성력을 다하여 뜻과 예절로써 봉양을 하였고, 국가에 충성을 다 하였으며 그에 아들 한보역시 효행을 이어받아 어머님께서 불편한 병환으로 돌아가실 때 하나님 에게 대신 하기를 기원하고, 어머님의 변을 맛보아 증험하여 주야로 피를 댈 만큼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결국 슬픔 을 당하여는 더욱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시묘까지 3년상을 하였다 하여 이분의 효행을 비쳐 옛 중국인 왕상이 얼음을 깨고 잉어를 얻은 일과 참새떼가 장막 에 날아들었다는 성언의 말을 비교 1815년에 도신이 서씨, 양씨의 효를 스스로 그 정성을 다해서 임금에게 상서를 하여 부자에게 당몽 교완 정려를 법과같이 세우게 하여 문중에서 건립하였음 서유경 서한보 효자각
풍산 유씨
효열 기적비
  • 건립연대
    1980년 11월 6일
  • 건립주체
    봉대주민
  • 유형 및 구조
    40×12×14
ㆍ어린 나이에 남원양씨 문중에 시집와 서 시아버지가 술을 좋아 함으로서 하 루에도 술을 먹지 않은 날이 없었고, 시어머니는 병으로 몸이 허약하여 가 사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뒤에도 부인은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모든 예를 갖추어 상례를 치루었고 남편이 괴병에 걸려 수 년동안 약을 사용하였으나 효염이 없었고 후원에 설단하여 하늘에 빌어 남편이 사망할 때 어린딸들만 남기고 돌아가시매 남편을 따라 죽으려 했으나, 마을사람 들의 설득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어린딸들을 양육시키는데 더욱 정열을 다하였으 며, 그 후 생계를 넉넉히하 여 어린 딸들 을 훌륭하게 성장시켜 출가시키고, 말년 에 재산을 지역사회 개발에 투자하여 그 공이 컸음. 1950년경 80년 1월 성균관장, 81년 10월 유도회 전북특별자치도 본부위원장 80 년 7월 운봉향교전관, 80년 8월 유도회 운봉지부장 효열 표창을 받았음
풍산 유씨 효열 기적비
청도 김씨
효열비
  • 건립연대
    1980년 4월 4일
  • 건립주체
    문중
  • 유형 및 구조
    비 42×10×40
ㆍ남편은 성격이 호탕해서 가사를 돌보 지 않고 풍류를 즐겨 하므로 부인이 모든 살림을 꾸려나갔다.
시어머니가 중풍에 걸려 몸져 눕게 되자 시어머니 의 간호를 3년간을 하루도 게을리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시어머니가 별세 하자 슬퍼함이 형언할 수 없었고 예절 에 맞추어 3년상을 치러 부인의 효성 에 감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어서 남편이 괴이한 병에 걸려 정성 드려 약을 쓰고 손가락을 깨서 주혈하 여 간호하였으나 결국 천명을 어기지 못하고 죽자 장례를 치르고 묘소옆에 기절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마을사람 들이 집으로 모시어 희생시키고 이후 어린 아이들을 잘 길러 마침내 마음을 돌이키고 부지런히 일하고 자녀 교육 에 정성을 다하였다고 함 고종기묘년에 전생전귀의 효로써 제사 를 지내고 무위 무탁한 외로운 아들을 양육 하는데 정성을 다하였으며 괴로 움을 참아가며 가도를 이룩한 덕을 영 구히 기념하기 위함 1959년 3월 전북고향 재단이사장, 1958년 8월 성균관장 표창.
 청도 김씨 효열비
청송 심씨
열녀비
  • 건립연대
    1918년(무인순조18년)
  • 건립주체
    문종
  • 유형 및 구조
    비 45×15×120
청송심씨가 14세로 박씨문중에 결혼 한 뒤 다음해 10월 남편이 괴질에 걸 려 절망한 지경에 이르러서 심씨가 돌 로 다섯손가락을 깨 피를 쏟아 입에 주혈하여 하루 동안을 연명하였으나 결국 남편은 돌아가시고 3년 동안 예 를 다하고 나서 심씨는 죽음으로써 정 열을 다하고져 남편의 무덤가에 가 있 었다.
그러자 친척들이 시부모님의 생후를 설명하며 살기를 권유하자 친척들의 말씀에 감동하여 회생의 눈물을 흘리 며 마음을 돌려 생전에 살아 계시는 시부모님에게 더 많은 효도를 했다고 함을 기린 효비
청송 심씨 열녀비
김남중
효자각
  • 건립연대
    1878년(무인 5월)
  • 건립주체
    문중
◦호조재량 월성 김효자는 경순왕때 수은공 후손으로써 부모가 병환으로 계실 때 부모의 오줌과 변을 맛보고 진단하였으며, 손가락을 짤라 피를 마 시게 하여 부모의 생명을 연장시켜 효 를 다하였고 상을 당하여는 그 어버이 의 장사를 치름에 있어 밤낮으로 비가 오나 눈이오나 정성어린 효행을 다함 으로 귀신이 불을 밝혀주고 사나운 범이 효자를 보호해준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78년 호조재량 월정 김효자 의 효행 사항을 조정에 명하여 명정 을 짓게 하여 모든 사람에게 알리게 하여 문중에서 비를 건립하였음  김남중 효자각비
이봉수
기적비
  • 건립연대
    11970. 10. 1
  • 건립주체
    1남원군수
  • 유형 및 구조
    비 47×20×140
이조 개국공신 흥안군 경무공 위제인 경상도 단성사 이희수씨의 맏따님으로 태어나 17세의 동네호인 필서 정병철 씨인 맏아들인 재진씨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님의 병환으로 보살피기를 무려 30년을 근면하고 게으른 일 없이 엄동 설한에도 깨끗한 물에 목욕재계하고산천에 신수를 드려 그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나 보람도 없이 세상을 뜨고 또 부군의 병석을 지키길 무려 10년을 갖 은 정성을 다해 쾌유를 빌었으나 보람 도 없이 42세에 세상을 뜨자 가사는 점점 기울어져 감에도 전 심력을 다하 여 자녀교육에 힘썼으며 1967년 9월 24일 거룩한 일생을 마쳤다.
부인의 장례식에는 조문객이 인산인해 를 이루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슬피 눈 물을 흘리며 동참 하였다하여 기린 비 1970년 전 국회의원 유광현씨와 전 남원군수 최봉채씨가 서기 1902년 출생한 이봉수여사의 효행상을 여성 들에게 본받게 하기위하여 건립함
이봉수 기적비
양계상
효자비
  • 건립연대
    1912년 명치,  45년 임자4월
  • 건립주체
    문중
  • 유형 및 구조
    비 80×10×45
모친이 심한 중병을 앓고 있어 그 병 을 고치기 위해 효성을 다하고자 모친 의 마지막 소원인 잉어를 구하기 위해 엄동설한에 냇물에 나가 본즉 때 아닌 잉어 한 마리가 얼음위에 나와 있어 잉어를 구하여 모친의 병을 고쳤다고 전해오고 하늘도 그 효성에 감탄하여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하여 기린 비 1815~1869년에 양계상씨의 효를 기리 기 위해 조정 승정원에서 포상하고 1912년 명치 45년 임자 4월 이 효성을 기리기 위해서 문중에서 비를 건립함 양계상 효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