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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면 행정복지센터

의지리

본래 운봉의 북하면(北下面) 지역으로 지형이 개미허리형국이어서 개암주 또는 의지(蟻池)라 했는데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월성리(月城里)와 의지리 일부를 병합하여 의지리(蟻池里)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군이 통합되면서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가 되었다.
의지리에는 서정(西亭), 율동(栗洞), 의지(蟻池)등이 있다.

의지리 서정(西亭) 마을

본래 운봉의 북하면(北下面)지역으로 월성(月城: 지금의 율동)에 속했던 마을로 독점골, 서지이, 서정(西亭)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의지리(蟻池里)에 편입되었다.

고려초기 목종조(穆宗:997~1009)때 김해김씨와 진양형씨가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하여 살아왔다.
6. 25이전까지만 해도 겨우 20여호의 작은 자연마을이었으나 6. 25이후 피난지로 알려져 인근 마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와 한때는 40여호까지 살던 때도 있었다.

6. 25동란때 이 부근 마을은 공비가 출몰하지 않은 마을이 없었으나 이 마을만은 한번도 공비의 침입을 받은적이 없는 천혜의 피난지였다.
마을 최초의 형성 위치는 전에 옹기를 구웠던 '독점골'로써 현재에도 10여호가 살고 있으나 돌이 너무 많고 협소하여 밑으로 내려와 자리를 다시 잡았다.

동편의 큰 마을 율동(栗洞)에서 바라볼때 율동 서편의 정자나무가 서있는 마을이라하여 어느덧 마을 이름을 서정(西亭)이라 했다.
또 '서지이'라고도 부른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에서 동북쪽으로 3km 떨어져 있고 율동과 일대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81.2 ha로 아영면 면적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비율은 전 11.4ha 농경지의 30.2%, 답 26.3ha 농경지의 69.8%, 임야 33ha 총면적의 40.6 %, 기타 10.5ha 총면적의 13.1%이다.
    가구는 28호로 아영면 전체의 2.8%이고, 인구는 81명으로 남자 45명, 여자 36명(아영면 전체의 3.2%)이다.
지 형
  • 마을뒤로 야산이 펼쳐져 있고 마을 앞으로는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 평범한 마을이다.
    임산자원이 풍부하고 개발한 야산에 밭이 많아 밭작물이 풍부하다.
    하천은 없고 도랑이나 개울이 마을 주위를 흐르는 해발 450m 이다.
주요노선
  • 아영면 순환도로가 마을 앞을 통과한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벼농사가 주농업이며 근래에 들어 밭에서 고추와 고랭지 배추, 무우가 출하되고 있다.
기타
  • 마을회관 1동
  • 모정 1동
의지리 율동(栗洞) 마을

본래 운봉의 북하면(北下面) 지역으로 월성(月城)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월성리(月城里)와 의지리 일부가 병합되어 의지리(蟻池里)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1592년)을 피하여 경주(慶州)김씨가 처음 정착할 때 옥녀봉(玉女峰)정기가 뭉친 이곳에 터를 잡아 씨족마을을 형성하였다.

그후 성씨(成氏), 정씨(鄭氏)등이 차례로 입주하였고 대대로 토호 부촌으로 이어 현재에 이르렀다.

주의의 지세가 아담스러워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마을로써 피난처로 알맞기에 초기에는 마을이름을 야동(夜洞)이라 칭하다가 경주김씨의 집성촌이라 하여 경주(慶州)의 옛이름을 따서 월성(月城)이라 하였다.
그후 밤나무를 많이 심어 소득을 올리고 유명해지자 1930년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밤골'이라 불렀다.
그 후 율동(栗洞)으로 바뀌었다.

지리적 위치
  • 면사무소(광평)에서 동북쪽으로 3.5km위치하고 함양군 백전면과 경계에 접해있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129.9ha로 아영면 면적의 3.6%를 점하며. 전답비율은 전 17ha 농경지의 31%, 답 37.7ha 농경지의 69%이다.
    임야 64ha로 총면적의 49.2 %, 기타 11.2ha로 총면적의 88%이다인구는 90명으로 남자45명, 여자45명(아영면 전체의 3.9%)이다.
지 형
  • 산세가 완만한 지역에 마을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어 어머니 품속같이 따뜻한 느낌이 드는 전형적인 산촌으로 마을주변의 모든 산에다 밤나무를 심어 가꾸기 시작한 것이 1920년이다.
  • 전에는 밤 수확이 많았으나 근래에 들어 감나무로 전환하여 감 수확이 많다.
    뒷산 옥녀봉에서 흐르는 개울이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흐른다.
    해발 500m이다.
주요노선
  • 함양군 백전면에 진입하는 시·군도 29번선이 마을 앞 300m 지점에서 통과한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주농업이며 고랭지채소, 무우, 감자 등을 생산하고 있다.
관광 문화 체육
  • 김남중 효자각이 마을앞에 있다.
  •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에 당산제가 열린다.
기타
  • 마을회관 1동
  • 모정 1동
의지리 의지(蟻池) 마을

본래 운봉의 북하면(北下面) 지역으로 지형이 개미허리 형국이어서 개암주 또는 의지(蟻池)라 했는데,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월성리(月城里)와 의지리 일부가 병합되어 의지리(蟻池里)에 편입되었다.
조선조 연산군(1494~1506)때 옥천조씨(沃天趙氏)가 괴질을 피하여 이곳에서 정착하였으며, 그후 김해김씨등의 타성이 차츰 이주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최초 정착한 옥천조씨가 마을 터를 잡을때 이곳의 지형이 개미허리를 닮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개미주'라 불렀는데, 오랜세월을 지내는 동안 어원이 변형되어 '개암지' 또는 '개암주'라 하였다.

후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의지(蟻池)라고 하였다.

지리적 위치
  •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동북쪽으로 1km위치하며 경남 함양군과 도계에 접한 마을이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75.8ha로 아영면 면적의 2.1%를 점하며. 전답비율은 전 14.6ha 농경지의 28.4%, 답 36.7ha 농경지의 71.6, 임야 12ha로 총면적의 15.8%, 기타 12.5ha로 총면적의 6.6%이다.
    가구는 37호로아영면 전체의 3.4%이고 인구는 83명으로 남자40명, 여자43명(아영면 전체의 3.5%)이다.
지 형
  • 마을형세가 평탄하고 들이 넓어서 농사짓기가 편리하고 농토가 많아 비교적 부유한 지역이다.
  • 산다운 산은 거의 없으며 마을 주위에 소규모 야산이 듬성듬성 있으나 밭으로 거의 개간된 상태다.
    남강 상류인 풍천이 마을 앞을 흐른다.
    해발 500m이다.
주요노선
  • 시 . 군도 29번선이 마을 앞을 가로질러 통과한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고랭지 감자, 배추, 무우등이 많이 생산되며, 축산을 겸한 과수등 복합 영농마을이다.
관광 문화 체육
  • 의지리(개암주)마을입구에 한쌍의 돌장승이 있다.
    500년전 최초 정착한 옥천조씨가 괴질을 막기위해 세웠다고 한다.
    또 마을이 배(舟) 형국이어서 앞에 있는 포플러가 돛대역할을 한다고 한다.
기타
  • 마을회관 1동
  • 모정 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