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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면 행정복지센터

월산리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오산 또는 월산(月山)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구주리(舊主里), 신지리(新至里) 일부와 북하면(北下面)의 성리(城里) 일부를 병합하여 월산리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 군이 통합되면서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가 되었다.
월산리에는 구지(舊至), 신지(新至), 오산(五山) 등이 있다.
월산리(月山里)는 신지(新至)의 본래 이름인 [달바위 섬]의 달(月)을 한자로 바꾸고 오산(五山)의 산(山)을 따 월산리라 했다.

월산리 구지(舊至)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구지내기 또는 구주(舊主), 구지(舊至)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구주리(舊主里), 신지리(新至里) 일부와 북하면(北下面)의 성리(城里) 일부가 병합되어 월산리(月山里)에 편입되었다.

고려 충렬왕 때(1300년경) 풍산 유씨(豊山柳氏)가 정착하였고 이어서 송씨, 오씨, 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한 유아봉모(乳兒奉母)의 유아중 가장 큰 애기에 속한 위치로서 제일 처음 생긴마을 이라하여 [구진애기(兒)]라고했는데 이를 한문표기에 의하여 [舊至]라고 했다고 한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에서 서북방 약 500m 떨어진 산속마을
리 세(면적)
  • 총면적은 159.8 ha로 아영면 면적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비율은 전 11.8ha 농경지의 21.1%, 답 44ha 농경지의 78.9%, 임야 89ha 총면적의 55.6 %, 기타 15ha 총면적의 9.6%이다.
    가구는 39호로 아영면 전체의 3.9%이고, 인구는 130명으로 남자 62명, 여자 68명(아영면 전체의 4%)이다.
지 형
  • 마을 뒷산의 형국이 중의 배낭과 같다하여 산이름을 [바랑산]또는 [배낭산]이라 부르며, 그 산아래 평탄한 지역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크고 작은 산들이 마을 뒤쪽으로 펼쳐져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마을 중앙으로 흐르고 있다.
    해발 450m이다.
주요노선
  • 마을앞으로 시의군도 27호 흥부선이 펼쳐져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미작이 주농업이며, 마을주변의 넓은 밭에서 고랭지 배추, 감자, 기타 약초 등을 재배하고 있다.
관광 문화 체육
  • 사적지 및 문화재
    • 이봉수여사 효열비 : 1970년에 전 군수(최봉채)가 이봉수 효행사항을 모든 여성들에게 파급하고자 건립
    • 고분군 : 가야계통의 5∼6세기 고분군
기타
  • 불교신자가 마을 주민의 80% 이상이며, 마을회관 1개, 마을창고 1개가 소재
월산리 신지(新至)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달바위 섬, 신지내기 또는 신지(新至)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구주리(舊主里), 신지리(新至里) 일부와 북하면(北下面)의 성리(城里) 일부가 병합되어 월산리(月山里)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때(1592년) 남평 문씨(南平文氏)가 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에 터를 잡아 살았으며, 그뒤에 정씨(鄭氏), 김씨(金氏) 등이 이주하여 왔는데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이 확트여 농경지가 일찍부터 발달하였기 때문에 급진적으로 마을이 확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뒤에 유아봉모(乳兒奉母)의 유아봉(乳兒奉)중의 하나인 반월산(半月山)에 위치하므로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월암도(月岩島)라 하였는데 이것은 나중에 한문으로 표현한 것이고 본래 이름은 [달바위 섬], [달바우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반월산이 넓은 들가운데 홀로 우뚝 솟아 마치 섬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옆의 마을 [구진애기]처럼 유아봉모의 형국에 따라 이곳은 [신진애기] 또는 [신지내기]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지명을 한자화 하면서 신지리(新至里)로 바꾸었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에서 서북쪽으로 500m 에 위치한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70.5 ha로 아영면 면적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비율은 전 10.7ha 농경지의 26.8%, 답 29,2ha 농경지의 73.2%, 임야 16 ha 총면적의 22.6%, 기타 14.6ha 총면적의 20.7%이다.
    가구는 34호로 아영면 전체의 3.4%이고, 인구는 85명으로 남자 37명, 여자 47명(아영면 전체의 2.6%)이다.
지 형
  • 사방에 넓은 평야가 있으며 앞으로는 풍천이 흐르고 마을을 가로질러 청계천이 흐르고 있는 산간부 평지다.
    해발 450m이다.
주요노선
  • 시의군도 흥부선 27호선과 일대농어촌도로와 접해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쌀농사가 주업이며, 마을뒷산에 밤나무 숲이 많아 밤수입으로 어느정도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토속음식으로 추어탕이 있다.
기타
  • 마을회관 1동
월산리 오산(五山)마을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자래뫼 또는 오산(五山)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구주리(舊主里), 신지리(新至里) 일부와 북하면(北下面)의 성리(城里) 일부가 병합되어 월산리(月山里)에 편입되었다.

1500년경 탐진 최씨(耽津崔氏)가 풍수리지설에 의하여 이곳에 정착하였고 이어서 김씨(金氏), 이씨(李氏), 형씨(邢氏)등이 입주하므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처음 최씨(崔氏)들이 정착할때 마을 옆산의 형국이 자라와 같아 자래뫼(자라뫼)라 불렀다.
그 후 오산(鰲山) 으로표기 하다가 분명하지 않으나 한문으로 자라 오(鰲)자가 쓰기에 번잡하므로 발음이 같은 오산(五山)또는 오산(吾山)으로 고쳐 썼다고 한다.
그 뒤 지금은 오산(五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1930년 무렵 한때는 원월산(元月山)으로 부른적이 있었다.

지리적 위치
  • 면소재지(광평)와 흥부마을(성리) 중간에 위치 한다.
리 세(면적)
  • 총면적은 111.7 ha로 아영면 면적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 비율은 전 11.5ha 농경지의 23.8%, 답 36,7ha 농경지의 76.2%, 임야 51ha 총면적의 45.6 %, 기타 12.5ha 총면적의 11.4%이다.
    가구는 40호로 아영면 전체의 4%이고, 인구는 161명으로 남자 70명, 여자 91명(아영면 전체의 4.9%)이다.
지 형
  • 마을 뒷산이 까마귀가 시체를 쪼는 형국인 비오탁시형(飛烏啄屍形)의 명당이 있다.
    월산리 관내에서는 가장 오지의 산속에 묻혀있는 마을로써 구릉지 중턱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다.
    임야 면적이 넓기 때문에 야산개발로 밤나무 조림이 잘 이루어져 있고 마을 가운데 도로를 따라 아주 작은 개울이 흐른다.
    해발 470m이다.
주요노선
  • 시의군도 27호선이 마을앞을 가로질러 통과하고 있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농업이주업이고,고랭지 감자, 채소 재배하고 있다.
종교시설
  • 월산교회가 마을 앞에 있다.
기타
  • 까마귀가 송장을 쫓는 형국인 비오탁시(飛烏啄屍 )의 명당이 있다.
  • 마을 회관 1개, 마을 창고 1개가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