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석리
본래 남원군(南原郡) 금안면(金岸郡) 하귀리(下貴里) 지역으로 독베기, 금안, 지만 또는 귀석(貴石)이라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하귀리(下貴里), 석전리(石田里) 각 일부와 두동면(豆洞面)의 도촌리(島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하귀와 석전의 이름을 따서 귀석리(貴石里)라 하고 금지면에 편입되었다.1995년 1월1일 남원시.군이 통합하여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가 되었다
귀석(貴石)마을
귀석(貴石)마을은 임진왜란후 지금으로부터 약 360여년전 이천(利川)서씨, 남원(南原)윤씨 , 고흥(高興)유씨가 전남 해안 지방에서 왜군의 침입을 피하여 북상하다가 맑고 기름진 넓은 옥토를 보고 생활의 터전을 잡기 위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 기타 성씨가 이주하여 큰부락을 이루게 되었으며 구한말까지는 본래 금암방(金岩坊) 지역인데 1914년 하귀(下貴)와 석전(石田)을 병합하여 귀석리로 칭하게 되었다. 그 후 1972년 남원군 지정 시범마을로 지붕개량, 마을안길과. 마을중앙로를 5m로 확장 개설하였으며, 1974년에는 대통령 특별하사금으로 40평 규모의 창고와 200평의 어린이 놀이터, 1978년에는 30평 규모의 현대식 콘크리트로 새마을 회관을 건립하는 등 1979년에는 취락 B형 사업으로 26동을 완전 서구식으로 건축하였으며, 진입로를 8m 폭으로 하여 포장까지 했으며 마을 안길은 5m 폭으로 확장 하였다.
지리적 위치 와 리세
- 금지면 소재지로 부터 곡성방면으로 약 5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라남. 북도의 도계를 이루고 있으며 섬진강을 중심으로 전남 곡성읍과 인접하여 국도 17호선(남원↔곡성)이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지극히 편리한 편이다.
- 총면적은 105ha로서 금지면 전체 면적의 3.2%를 점하며 비교적 작은 마을이며 전답 비율은 전 17ha로 농경지의 23% 답은 57ha로 농경지의 77% 이다. 임야는 없으며 기타 면적은 31ha로 총면적의 29.5%이다.
지 형
- 전라남.북도의 도계 마을로써 섬진강을 경계로 해발 70m미만의 평야지대로 비옥한 토질로서 농경지의 1969년에 시행한 경지정리 사업으로 100%의 경지정리율을 보이고 있다.
교 통
- 국도 17호선 (남원↔곡성)이 마을앞을 지나며 지방도 730호 (금지↔대강)가 마을옆을 지나고 있어 교통은 아주 편리하다.
주요산업 및 토산물
- 산업구조로는 농림업이 92%이고 기타업이 8%이다. 주산업으로는 쌀농사 위주의 농업에서 1980년도부터 점차 시설원예로 딸기, 감자 재배면적이 확대되어 지금은 전가구의 60%가 참여하고 있다.
공공시설 및 주요산업
- 공공시설로는 마을회관 1동과 모정 1동이 있고 주요기업으로는 풍원몰탈시멘트공업(주)이 있어 콘크리트제품 생산. 판매를 통하여 이 지역 건설사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기 타
- 이천서씨 후손인 서택인 (徐澤仁)의 처 경주 김씨와 그 아들 영인(永仁), 영석(永錫), 손자 봉신(奉信), 봉주(奉柱)가 모두 효성이 지극하여 고종 30년 (1893) 김씨 부인을 비롯 다섯사람에 명정의 은전을 내리니 그야말로 한 집안 3세에 걸쳐 다섯사람의 孝와 烈이 되므로 세상 사람들은 이 정려를 『3세 5효열 정문』집이라 추앙해 마지않았으며 또한 마을입구에 40여년전에 세워진 烈婦晋州姜氏 紀蹟碑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살다가 남편이 죽자 남편의 시신옆에서 3일간 통곡하면서 같이 죽어간 한 烈女의 행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婦人들의 道가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사표가 되기도 해 마을을 찾는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1940년~50년대에 만들어진 주민의 애환이 서린 마을앞 애장터는 1969년 경지정리와 더불어 마을 동산으로 조성 되어 유상각이 건립 되어 있으며 1988년에는 88올림픽을 기념해 남원군 88올림픽 기념 꽃동산으로 명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