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대첩과 이성계
고려시대의 남원은 태조 23년(940) 남원부(南原府)로서 주변의 5개 현(懸) 을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지가 되어 전라도(全羅道)의 4대 도시 가운데 하나 가 되었다. 우왕 6년(1380) 8월에 왜구들은 아지발도(阿只拔都)를 선봉으로 기병(騎兵) 7백명, 보병(步兵) 2천명으로 충청 · 전라 · 경상도의 여러 고을을 약탈하고 9월에 마침내 인월역(引月驛)에 주둔하였다.
이에 이성계(李成桂) 가 지휘하는 고려군은 운봉의 황산(荒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왜구를 크 게 물리쳤는데,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 7일 간이나 물을 먹을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싸움을 황산대첩(荒山大捷)이라고 하는데 진포대첩 (鎭浦大捷 ),홍산 대첩(鴻山大捷)과 더불어 고려말 왜구와 싸워 이긴 3대 대첩 중 하나인데 이성계는 황산대첩 이후 큰신망을 얻어 새로운 세력을 구축 하여 조선을 건국하는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는 선조 10년(1577) 8월 당시 전라도관찰사 박계현 이 [고려사(高麗史)]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내용을 고증하여 조정 의 허락을 받아 운봉현감 박광옥이 모든 공사를 담당하여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