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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면 행정복지센터

상동리

용장서원

  • 본래 남원군 이언면(伊彦面) 지역으로 이언면의 윗쪽이 된다 하여 웃몰 또는 상동(上洞)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부동리(富洞里)와 상동리(上洞里) 일부를 병합하여 상동리라 하고 주생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주생면상동리가 되었다. 상동리에는 부동(富洞)과 상동(上洞) 등이 있다.
상동리 상동(上洞)마을

본래 남원군 이언면(伊彦面) 지역으로 이언면의 윗쪽이 된다 하여 웃몰 또는 상동(上洞)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부동리(富洞里)와 상동리(上洞里) 일부가 병합되어 상동리에 편입되었다.
1375년경(고려 우왕 때) 처음으로 흥성 장씨(興城張氏)가 살았고 약 580여년 전에는 남원 양씨(南原 梁氏)인 경노공(敬老公)이 순천부사(順天府使), 안동부사(安東府使),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한 후 장산(長山) 마을에 정착했으며, 530여년전에는 양천 허씨(陽川許氏)인 허규(許珪), 허 항(恒) 이, 350여년 전에는 남원 윤씨인 진사(進士) 윤인숙(尹仁淑)이 순창에서 이주하여 왔다. 그 후 김(金)씨 임(林)씨, 소(蘇)씨, 황(黃)씨, 최(崔)씨등이 정착하여 현재의 상동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조 예종(1468∼1469)때 두사춘(杜士春)이란 중국의 지사가 지당 고개에서 잠시 쉬다가 교룡산(蛟龍山) 줄기 뒤의 산세를 보고 "아! 이런" 하고 감탄을 연발하니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을 [이런]이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쓰면서 [이언(伊彦)]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이 마을은 풍수리지에 의하면 남원의 다섯 명당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며, 돈학당(敦學堂), 서당(書堂) 등이 있어 많은 인재를 낳았고 부자가 많아 지난날 남원 48방 고을중 가장 부귀를 누린 곳이다. 이 마을은 전형적인 옛 반촌으로 손꼽아온 마을이고 교룡산의 정기를 이어 받아 많은 선비와 관리들을 배출 시켰으며 전설이 많고 동·서·북의 세방면은 노송이 우거져 광주리 속과 같고 선녀가 가무를 즐기는 형상으로 생겼다하여 선인무수(仙人舞手)의 형국(形局) 이라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조선시대때 관리와 반족, 사대부의 출입이 잦았던 곳으로 과거 이언방(伊彦坊)의 방청(坊廳)이 있었고, 봉건적 사상이 농후한 관계로 아직도 옛 풍물이 많고 고가(古家) 로서는 조선식 건물이 있으며 마을진입로 및 안길이 말끔히 포장되고 부엌개량,주택개량, 회관신축등 문화농촌으로 탈바꿈 하였다. 이 마을은 농촌인지라 벼농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구 한말까지의 교육기관으로서 용장서원(龍章書院)이 있었으며 또 부자충의문(父子忠義門)이 있어 충효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지리적 위치
  • 면 소재지(서만마을)로 부터 동쪽방향 3.2㎞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전라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다.
리 세(면적)
  • 1997년 6월말 현재 총 면적은 2,654㏊로 주생면 전체 면적의 3.3%를 점하고 전답 비율은 논이 33.5㏊로 농경지의 74.1% 밭은 11.7㏊로 농경지의 25.9%이다. 임야는 29.9㏊로 총 면적의 1.1%이다. 가구는 57호로 주생면 전체의 5.5%이고 인구는 204명(남 97명,여 107명)으로 주생면 전체의 6.6%이다.
지 형
  • 평야 지대로서 토질은 비옥하며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산이 총면적의 1.1%을 점하고 거의 송림으로 덮어 있으며 임야의 인공 조림지역 산림정책에 힘입어 사방사업이 잘 되어 있다.
교통 및 통신
  • 제천∼낙동으로 연결되는 군도 13호선은 총연장이 4.3㎞로 마을앞을 통과 하고 있으며 전가구에 전화가 설치되어 100% 이용하고 있다.
관광·문화·체육
  • 주요 문화재
    • 용장서원(문화재 자료 53호), 윤영채 가옥(문화재 자료 117호)등이 있다.
  • 부자충의문(父子忠義門)
    • 남원 양씨 참판공의 후손 청계 양대박(梁大樸)이 지금의 상동리 동소(東昭)에서 태어나 임진왜란때 3천 의병을 모집, 임실 운암에서 싸우다 전주북정(全州北町)에서 3부자가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고 청계집 (淸溪集)에 기록 되어 있으며 그 후 충신으로 포상 되어 보국숭록대부(崇錄大夫) 병조판서로 봉하고 충의문을 건립케 하였다고 한다.
  • 용장서원(龍章書院)
    • 남원 양씨의 충효를 추모하여 이곳에는 양능양(梁能讓), 양주운(梁朱雲), 김구용(金九 容), 양대박(梁大樸)등 4현(四賢)을 배향하고 있다. 매년 3월 남원 유림과 자손들이 제사를 올리고 있다.
  • 돈학당(敦學堂)
    • 이언(伊彦)의 4대성씨인 장(張), 양(梁), 윤(尹), 허(許)씨 등이 학문의 전당으로 건립하였던 곳으로 이곳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 하였다고 한다.
  • 양주익(梁周翊)
    • 양주익은 조선조 경종2년 (1722년)에 태어나 81세까지 살았던 대문장가로서 호는 무극재(無極齋)이며 병조참의와 능주목사를 지낸 인물로 그가 남긴 문집 무극집(無極集)중 저춘몽연(著春蒙緣)은 춘향전(春香傳)의 고본(이본, 근원설화)일 것으로 추측된다.
  • 당산제
    • 전래 되어온 풍속으로 당산제를 지내 오는데 후록(後麓) 산봉(山峰)과 500여년된 노거수 세곳에 매년 정초에 이언방인 상동·부동·중동 주민 전체의 정성으로 제주를 선정하여 행사를 하였는데 고목(古木)의 자연사로 지금은 두 곳의 노거수(槐木,桂樹木)만 남아있어 마을 주민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괴목(槐木)은 동민의 휴양처요 심주(心主)로서 여기고 있으며 전라선 철도 이설로 괴목(槐木)이 없어질까 두려워 하며 주민 모두가 보존을 바라고 있다.
종교시설
  • 한국기독교 장로회 상동교회가 있다.
상동리 부동(富洞)마을

본래 남원군 이언면(伊彦面) 지역으로 망골 또는 부동(富洞)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부동리(富洞里)와 상동리(上洞里) 일부가 병합되어 상동리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형성 내력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조선조 성종때 옥천 조씨(玉川趙氏)가 제일 먼저 정착하였으며, 100년후 경주 김씨(慶州金氏), 남원 양씨(南原梁氏), 서(徐)씨, 송(宋)씨, 장(張)씨가 차례로 정착 지금과 같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지사 두사춘(杜士春)이 지당 고개에서 휴식중 "아! 이런!"하고 탄복했던 이곳을 이언(伊彦)이라 호칭하고 당초 이언방(伊彦坊)에 속해 오고 있었으나 그후 이곳을 속칭 망골이라 불렀다. 망골은 한문으로 망동(望洞)이었는데 망할 망(亡)자와 비슷하게 들리므로 폐가의 인상?? 준다하여 1930년경에 망(望)과 뜻이 비슷한 부할 부(富)자로 바꿔 부동(富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은 남원시내 중심부에 연접되어 도시의 문화생활 전도가 비교적 빠르고 많은 농가들이 소규모 소채 재배로 짭잘한 소득을 올리고 마을진입로 및 안길이 말끔히 포장되어 버스가 하루 4회에 걸쳐 왕래하며 부엌·주택개량, 회관등이 지어져 전원적인 농촌으로 바뀌었다. 주업은 농업이며, 전라선 철도와 남원~순창간, 남원~곡성간 국도와 인접하여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마을앞에는 여순반란시 공비를 토벌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군사기지 비행장이 지금까지 있고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던 이태현(李太鉉)의사의 생가가 있었으나 현재는 보존되지 않고 동림교(東林僑) 건너편에 사적비만 남아 있다. 마을 뒷편에 있던 국정사(國淨寺)는 1969년도에 김양선(金良璇)이 건립하였으나 이백면(二白面) 주지암(住智庵)으로 옮겨갔다.주요 성씨는 경주 김씨(慶州金氏), 남원 양씨(南原梁氏), 흥성 장씨(興城張氏), 달성 서씨(達城徐氏) 등이 있다.

지리적 위치
  • 면 소재지 (서만마을)로 부터 동쪽방향 3.5㎞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전라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다. 마을앞을 통과하는 군도 13호선은 총연장이 4.3㎞로 제천∼낙동으로 연결된다.
리 세(면적)
  • 1997년 6월말 현재 총면적은 2,654㏊로 주생면 전체 면적의 2.9%를 점하고 전답 비율은 논이 21.1㏊ 농경지의 76.7% 밭은 6.4㏊로 농경지의 23.3%이다. 가구는 57호로 주생면 전체의 5.5%이고 인구는 204명(남 97명,여 107명)으로 주생면 전체의 6.6%이다.
지 형
  • 평양지대로서 토질은 비옥하며 곡창지대를 이루고 마을앞에는 소하천인 신정천이 흐르고 있다.
주요기업
  • 남원농협미곡종합처리장, 자연미곡종합처리장, 선일도정공장, 남원철망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