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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 행정복지센터

부절리

부동(釜東)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부곡리(釜谷里) 지역으로 가말 또는 부동(釜洞)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부동리(釜洞里), 중절리(中節里), 이곡리(梨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부동과 중절의 이름을 따서 부절리(釜節里)라 하고 부절리에 편입 되었다. 1975년 부동리(釜洞里)가 부동(釜東), 부서(釜西)로 나뉘어졌다.

남원시에서 동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마을은 동쪽에 고남산(古南山)을 등지고 북쪽에는 동서로 요천수가 흘러 산자 수명한 마을이다. 농경지는 비교적 평탄하고 기름져서 쌀의 질이 좋아 옛날에는 부절쌀을 진상미로 올릴 만큼 질이 좋았다고 한다.

고려말엽 마을 동쪽으로 1km쯤 떨어져 있는 속칭 퉁덤에서 평산신씨(平山申氏)가 살았다 하며, 동쪽으로는 500m에 위치한 현재의 '개양골'에서 양씨(梁氏)가 살았다고 한다. 그후 조선조 선조때(1600년경) 전주 최씨(全州崔氏), 밀양 박씨(密陽朴氏),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세 성받이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래 이름은 가말이다. 조선조 정조때 이서구(李書九)대감이 전라감사 시절에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을 가르키며 만사람을 배불리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만인호인지상(萬人好人地相)이라 감탄했는데, 이에 따라 지세가 가마솥과 같다하여 처음에는 '가마말' 또는 '가말'이라고 했다가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부동(釜洞)으로 바뀌었다. 그 뒤 행정구역을 1구, 2구로 나누었다가 1975년도 주민조직 개편에 따라 부동(釜東)과 부서(釜西)로 나누었다.

정부지원으로 1992년 마을회관(2층 80평)을 건립하여 부동과 부서가 마을 발전을 위한 공동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으며, 1997년 경지정리가 완료되어 마을 앞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마을안에는 '上之 30年命旌'이라 새겨진 효자, 효부 정려비(旌閭碑)가 있는데 최재형(崔在衡)부부의 시묘살이의 효성이 지극하여 고종 30년(1893)에 조정에서 하사하였다.마을앞에 있는 최용전(崔龍田) 선생의 유허비는 오늘날 우리에게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던 옛 우리 조상들의 멋을 짐작케 해 준다.

부동(釜東)마을

부서(釜西)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부곡리(釜谷里) 지역으로 가말 또는 부동(釜洞)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부동리(釜洞里)), 중절리(中節里), 이곡리(梨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부동과 중절의 이름을 따서 부절리(釜節里)라 하고 부절리에 편입 되었다. 1975년 부동리(釜洞里)가 부동(釜東), 부서(釜西)로 나뉘어졌다.

중절(中節)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중절리(中節里) 지역으로 가운데말 또는 중절(中節)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부동리(釜洞里), 중절리(中節里), 이곡리(梨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부동과 중절의 이름을 따서 부절리(釜節里)라 하고 부절리에 편입되었다.

산동면 중절마을은 산동면으로 보아 중간지역인 고남산 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앞 북쪽으로는 동서로 맑은 요천수가 흐르고 있으며 마을 뒤로는 88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1680여년경 진주 소씨(晋州蘇氏)가 진주에서 들어와 남원의 보절, 덕과를 거쳐 이곳을 개척하여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1972년도에는 새마을 운동 전개로 지붕개량, 진입로와 마을안길 150m, 소하천 정비 200m등 말끔히 단장하였으며 1978년 대통령 하사금사업으로 70평의 다목적 2층회관을 건립하고 마을문고, 공동작업장 등 복지마을의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어 남원시에서도 우수마을로 평가되고 있다.

70년대 새마을사업이 전개될때 외국인 홍보마을로 선정되어 경향각지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이 마을을 견학하여 새마을 사업의 구심체 역할을 하였다.
1997년에 경지정리가 완료되었으며 현재 마을 동쪽 고남산밑 산비탈에 20여정보 밤나무를 심어 크게 번성하고 있다. 이 밤나무는 1932년 소갑원씨가 식재하였는데, 아들인 소정석씨가 확장하였고, 현재는 손자인 소순열씨가 관리하고 있으며 지금도 각지에서 유실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중절(中節)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