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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 행정복지센터

대상리

대상(大上)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대치리(大峙里) 지역으로 한재 또는 대치(大峙)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상점리(上占里)와 대치리(大峙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치와 상점의 이름을 따서 대상리(大上里)라 하고 대상리에 편입되었다.

1500년경 창녕 조씨(昌寧曺氏)가 맨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였으며 그후 김해 김씨(金海金氏), 장흥 고씨(長興高氏)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1950년 6. 25사변으로 인하여 마을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가 1953년 다시 장흥 고씨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
마을은 천황봉 자락이 흘러내려 형성된 분지형태의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북재(北峙), 말재(馬峙), 갓재(加峙), 둔병치 등 여러 높은 고개가 많은데 큰 고개가 많다하여 한재로 불렀는데 '한재'의 '한'은 큰 것을 뜻함으로 큰 대(大)자를 넣어 대치(大峙)가 되었는데 1914년 한재와 상점을 병합하여 대상(大上)으로 바뀌었고 197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상리(大上里)로 되었다.

원래 이 마을은 농업이 주가 되는 영세한 마을이었으나 1972년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개량, 마을안길 넓히기 등 환경개선사업을 하였고 또 방대한 밀원으로 한봉이 유명하며, 산나물이 많이 생산되어 소득증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1994년 정부의 지원으로 회관이 건립되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천황봉 아래 만행사(萬行寺)라는 절이 있어 고승의 설법이 신통하고 유명하여 이 소문을 들은 왕이 만행사에 행차하여 삼일동안 설법을 듣고 정사를 살폈다고 하여 절 이름이 귀정사(歸政寺)로 바뀌고, 마을의 지명들도 요동, 당동, 둔병치 등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그때가 요순시절만큼 태평하였다고 전해온다.

대상(大上)마을

상신(上新)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상점리(上店里) 지역으로 웃점 또는 상점(上店)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상점리(上岾里)와 대치리(大峙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치와 상점의 이름을 따서 대상리(大上里)라 하고 대상리에 편입되었다.

1580년경(선조때)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맨처음 자리잡고 살기 시작하였다. 그후 김해 김씨(金海金氏), 장흥고씨(長興高氏), 송씨(宋氏), 안씨(安氏)등이 한때 번창하였으나 1950년 한국동란 당시 마을이 모두 불탄 후 폐허가 되었다가 수복후 여러 곳에서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오늘의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1580년경 박씨(朴氏)가 자리를 잡아 마을이 번성할 때 사기점(沙器店), 옹기점(甕器店), 토기점(土器店) 등 3개소가 있었는데 현재의 마을이 형성된 곳을 맨 위쪽에 있는 '사기점'이라하여 상점(上店)으로 불렀다.
1972년 자연마을 개편에 따라 상점(上店), 북재(北峙), 새터(新基)마을이 병합되어 상점과 신기의 이름을 따 상신(上新)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근에는 산에서 각종 산나물과 한약재가 채취되고 경제림단지를 조성하여 유실수를 가꾸는 부업으로 생활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옛날 이 마을에 한(韓)장사와, 최(崔)장사 두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항상 마을앞 정자나무 그늘에서 돌을 굴리며 놀았다고 전한다.
1996년 마을 회관을 건립 주민의 화합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신(上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