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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 행정복지센터

대기리

대촌(大村)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이곡리(梨谷里) 지역으로 지형이 이화낙지(梨花落地) 형국이어서 배실 또는 이곡(梨谷)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태평리(太平里), 신풍리(新豊里), 이곡리(梨谷里), 대촌리(大村里)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태평리라 하고 태평리에 편입되었다.

조선조 세조(世祖)때인 1460년경 능성 구씨(綾城具氏)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후 부안 김씨(扶安金氏), 서산 유씨(西山柳氏)가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 하였다.
본래 가장골, 용소골, 대바위골, 작상골 등 여러 작은 마을을 거느린 중심마을이어서 '큰마을' , '큰말'이라 부르다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대촌(大村)으로 바꾸었다.
구한말 이전까지는 산동방(山東防)의 창고와 옥(獄)이 있어 큰마을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그런데 옥은 현감이나 원님등이 있는 고장에만 있는 관청이니 이곳에 옥이 있었다면 당시 현감이 주재하는 고을이 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대촌마을은 국도 19호선의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로는 천황봉(天皇峰)이 웅장하게 솟아있고 앞으로는 고남산(古南山)이 있다.
그밑으로는 요천수가 흘러 경치도 좋으려니와 천연적인 수리시설이 잘되어 농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주민의 생활수준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였으나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에 따라 마을의 면모를 새롭게 해오던 중 1970년 도에는 남원군 취락구조 개선마을로 선정되어 주택개량을 하였으며 79년도 마을회관을 건립하였고, 1996년 경지정리 사업을 완료하였다.

대촌(大村)마을

등구(登九)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등구리(登九里) 지역으로 거북이가 기어올라 가는 형국이라 하여 등구레 또는 등구(登龜)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등구리(登九里), 선촌리(仙村里), 신기리(新其里), 대촌리(大村里), 대치리(大峙里)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대촌과 신기의 이름을 따서 대기리(大其里)라 하고 대기리에 편입되었다.

1400여년경 김녕 김씨(金寧金氏)가 처음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조선조 초기에는 남원 양씨, 여산 송씨, 전주 이씨가 이주해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이씨, 양씨, 박씨, 송씨, 순으로 처음 정착한 금녕 김씨 자손들은 세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조선조 정조때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크게 길한 지형이 있다하여 말에서 내려 마을 뒷산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저 산은 거북이가 기어오르는 형상이니라" 하므로 등구레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오를 등(登), 거북 구(龜)를 넣어 등구리(登龜里)로 썼는데 후에 거북구 대신 아홉 구(九)자로 바뀌었다.
1930~1950시절에 한때 대촌과 등구를 합하여 대기리라 하고 1972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등구마을로 환원하였다.
요천수를 끼고 형성된 비옥한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산물로는 밤이 생산되고 있다.

1994년 등구 회관을 건립하였으며 1996년 대기교를 철거하고 백년대계로 튼튼한 교량을 가설하고 넓은 진입로를 개설하였으며 1997년 경지정리를 완료하고 1997년 중절~석동간 농어촌도로가 이어져 명실 상부한 현대의 농어촌으로 발전하고 있다.

등구(登九)마을

평선(平仙)마을

본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선촌리(仙村里) 지역으로 불선치(佛仙峙)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등구리(登九里),선촌리(仙村里), 신기리(新其里), 대촌리(大村里), 대치리(大峙里)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대촌과 신기의 이름을 따서 대기리(大其里)라 하고 대기리에 편입되었다.

평선마을은 1750년경 남원으로부터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처음 이주하여 살기 시작 하였다.

그후 등구리의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분가하여 불선치(佛仙峙)에 살기 시작하여 연이어 등구 주민들이 분가하여 평지에 취락을 형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도사가 마을앞을 지나다가 앞산은 신선(神仙)이 독서하는 형세이고 뒷산은 부처를 모시는 형상이라 했는데 이에 따라 그 산을 선인봉(仙人峰)과 불선암이라 부르고 불선암(佛仙岩)과 선인봉(仙人峰)의 둘을 합해 불선치(佛仙峙)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불선치 마을 아래에 등구(登九)에서 분가한 주민들이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평지(平地)에 형성된 마을이라 해서 평지(平地)라 불렀다.

197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지(平地) 마을과 불선(佛仙)마을을 합하여 평지와 불선의 이름을 따서 평선(平仙)으로 부르고 있다.

조그만 농경마을로 영세성을 면치 못했던 이마을 역시 1972년 새마을 운동에 따라 지붕개량, 안길포장이 실시되었고 1979년에 간이급수시설을, 1991년에는 현대식 마을회관을 건립 하였다.

평선(平仙)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