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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 행정복지센터

귀정사

귀정사

  •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2길 246 / 전북특별자치도지정 기념물 제76호 (1985.8.16. 지정)
  • 연 혁 : 귀정사(歸政寺)는 515년(무령왕 15)에 현오국사(玄梧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처음에 만행사(萬行寺)라고 했는데 이 절이 위치한 산 이름이 만행산인 데서 유래한다. 그러다 귀정사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옛날 만행사에 천하에 이름 높은 고승이 있어 당시 임금이 이 사찰에서 고승의 설법을 듣고 탄복하여 3일간 머무르고 돌아간 데에 기인한다. 사찰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중창하였으나, 1950년대 공비 토벌로 소각되었다가 1968년 대웅전, 승당, 칠성각, 요사를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덕암 삼층석탑

창덕암 삼층석탑

  •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중절길 108 문자 제60호(84. 4. 1)
  • 연 혁 : 이 석탑은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높이 9m에 이르는 대형탑이다. 창덕암은 1933년 김씨 부인이 세운 암자로, 부녀자들이 기도를 드리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이곳에 기도한 사람은 신의 도움으로 소원성취 한다고 소문이 나,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이면 기도하러 오는 부녀자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석탑은 층이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별로 줄지 않으며, 구조가 단순하고 선이 굵고 두터은 느낌을 준다.

대상 전주최씨 열려문

  •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 산 107
  • 연 혁 : 충ㆍ효혈행 사항 : 전주 최씨는 1830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장흥고씨와 혼인, 2년후인 1832년(19세)에 유복자를 남긴 채 남편과 사별하고 청상의 몸으로 가정형편이 지극히 곤란함은 물론 주위의 유혹과 문중에서 재가의 권유도 있었으나 오히려 정절을 굳게 하고 어린 유복자를 훌륭하게 잘 길러야 되겠다는 굳은 의지로 어려운 가사를 번창하게 하고 정절로 가문을 빛냈으며 1878년에 세상을 떠나매 그 정절이 원근에 자자함은 물론 타의 가문에 수범이 되어 고씨 문중에서는 1880년 그 정절을 기르기 위하여 열려문을 건립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음

최재형 효자비

최재형 효자비

  •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 1987-1
  • 연 혁 : 충ㆍ효열행 사항 : 최재형(1883 ~ 1900) 전주 만육공의 후손으로 처 밀양 박씨와는 남다른 부부애가 두터웠으며 형제간은 물론 이웃에게까지 우애와 효성으로써 어른들을 모셨고 부모님께는 하루가 멀다하고 깨끗한 옷을 갈아 입히고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구미에 맞는 물고기를 구하기 위하여 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식성에 맞도록 부모님을 공경하였으며 넉넉치 못한 가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조그마한 심중도 끼쳐 드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항상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음.

부모님이 병석에 누었을 때는 주야로 온갖 정성을 다하였고 병세를 알아보기 위하여 요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진단하는 등 그정성이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부모님의 상을 당하였을때는 인근 마을까지 울음소리가 들렸으며 이러한 소문이 각처에 까지 자자하여 부절 최씨 문중에서는 이 부부를 후세에 알리고자 귀감을 삼아 효자비를 건립 하였음.

성 산

  •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식련리 산 1-3
  • 연 혁 : 백제때 신라를 향한 국경의 연접성으로써 군사용의 양곡을 저장하는 성으로 합미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최여운 효자비

최여운 효자비

  •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 1992-2
  • 연 혁 : 충효열행 사항 : 최여운(1750 ~ 1821) 시호는 면욱당이며 최여운의 아우 최여구(1770 ~ 1830) 시호는 참호 이다. 위 두분의 효자는 고려초 전주최씨 만육공의 11대 자손으로써 평소 남다른 범인을 초월하는 효행이 극진한 형제였다. 부모상을 당하여 선영이 부절에서 16km 떨어진 장수군 마전등 심심 계곡에 묘를 만들었으므로 3년간 여막 시묘 생활을 하여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산신까지 감동케 하였으며 밤이나 호랑이가 나타나 불을 밝혀 보호하였다 한다.

두발과 손톱은 부모가 물려준 살붙이라 생각하고 시묘 생활 중에는 자르지 않아 원시인과 유사하기도 했다. 형 여운은 어린동생 여구와 시묘생활시 아우의 식사를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까지 매일 부절에서 묘소까지 운반 제공한다 함은 말로써 형연치 못한 고생과 어려움이 뒤따라 왔으며 부절에서 내려올때는 호랑이가 하루도 빠짐없이 주위를 보호하고 사라지곤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