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리
목동(木洞)마을
목동은 1570년(선조 3년) 김일(金鎰)의 후손인 김익복(金益福)이 부안군에서 출생하여 금지면 순흥 안씨를 아내로 맞아 세 아들을 낳았다. 세 아들은 마을뒤 풍곡사 주변의 운중발룡형(雲中發龍形)의 터에 선조를 모시면 자손들에게 큰벼슬이 이어지고 번창할 것이라는 말에 따라 이곳에 묘를 쓴 후 그 자손들이 살아옴으로써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후 많은 성씨들의 들어왔으나 이씨 오씨 등 몇가구를 제외하고 모두 부안김씨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본래 마을 주변에 나무가 무성하여 『나무골』로 부르며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목동(木洞)으로 바뀌었다.
예부터 이 마을은 반촌(班村)으로 이름난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영광군수로 재임하다 권율장군의 막장으로 싸우다 순국한 김익복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대학교수, 석사, 박사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박사 마을이다.
1943년에는 마을 회관이 건립되었고 1963년도에는 애림녹화로 목동산림계가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정부 지원으로 회관을 헐고 그 자리에 1984년 종합복지시설인 복지회관을 건립하였다.
농촌지도소에서 시범건강 마을로 선정 공동작업장, 체육시설을 설치하는 등 앞서가는 마을로 발전하고 있으며 1996년 마을에 경지정리를 완료하였다.
이 마을은 1961년 당시 전국에서 제일 앞서가는 마을로 선정되어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장군이 방문하였으며, 1692년(숙종 18) 에 부안 김씨 충경공 김익복의 아들 김화를 주벽으로 모셔 건립된 요계서원(蓼溪書院)의 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