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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골 남원

근대

근대

구한말 의병활동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 활동하던 박은식(朴殷植)은 자신의 저서 <독립운동지혈사>에 서 "의병은 백성의 군대이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즉시 의로써 일어나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싸우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국난을 맞아 자기의 몸을 던져 나라 를 건진 이들 선인들의 고귀한 희생이야말로 오늘 우리 민족의 생존을 있게 한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근대의 의병은 이전의 의병들과는 성격이 달랐다. 비단 일본군 뿐만 아니라 친일 정부와 그 관료들 그리고 관군조차도 적으로 삼아 그들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아가며 힘겨운 투쟁을 하여야 하였다. 이것은 근대 의병이 단순히 정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조선독립대동단 전북지부

대동단은 1920년 김가진, 전협보, 최익환 등이 주동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전협보와 최익환은 귀족 관료 유림 학생 의병 승려 여자 보부상 등 각계 각층에서 수만명의 단원을 포섭하여 독립운동을 하게 하는 한편, 인쇄기를 구입하여 비밀리에 '대동신문'을 발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전 법무대신 김가진을 고문으로 삼고 의친왕의 승인을 얻어 선언서를 인쇄,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는 등 애국운동을 전개하였다. 대동단 남원지부는 서울 본부와의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남원지부의 활동목표를 설정하였는데, 항일운동에 동조하는 지방의 유지들로 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중앙본부를 통 하여 상해 임시 정부에 헌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동단은 전국적인 독립단체였고 의친왕까지 가담되어 있어 일본 경찰의 예리한 감시 추적을 받았다. 결국 1922년 9월, 대동단 전북특별자치도 지부의 임원들은 모두 왜경에 체포되 었다. 한태현, 강경진, 이범수, 형갑수 등은 이 때 체포되어 모두 1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루어야 했다.

5.13 투옥사건

일제말기에 이고장 젊은이들이 항일투쟁의 뜻을 같이 하기로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들은 모두 이십대 전후의 청년들로 노상인의 집에서 만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다짐하였다.
첫째, 일제시대 금지되었던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한 내용이 있는 책을 서로 교환하여 읽고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할 것.
둘째, 일본의 민족차별대우 탄압정책 및 기타의 만행등을 우리 민족에게 고발 항일의식을 높이기 위해 유인물을 제작 배포한다.
셋째, 징병을 절대로 기피하고 지리산에 은신했다가 미군이 상륙하면 바로 동참할 준비를 할 것.
1945년 5월 초 운봉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박주영이 남원 경찰서 고등계 형사에 의하여 체포 구금됨으로써 5.13투옥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에 남은 친구들은 서로 연락을 하여 소위 일인들이 말하는 불온서적, 일기장, 편지 등을 소각하거나 은닉해 버렸다. 그러나 장홍식, 노상인(당시 남원군청 내무과 근무), 정영필(보절 국교 교사), 정인호(순천 조흥은행원) 등이 구속되고 며칠 뒤에 서태규 이정옥 노형봉 이현필, 노종선 등이 연행 구금되었다. 이것이 5.13 투옥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