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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면 행정복지센터

환봉사

환봉사

  • 환봉사
  • 건립년도 : 1930년
  • 추모제향 : 환봉사(環峯祠)는 중시조(中始祖) 천만리 (千萬里)와 천상(千祥), 천희(千禧) 삼위(三位)를 모시고 있으며 제향은 춘향제(春香祭) 라 하여 한날에 거행된다.
  • 위 치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 1091번지
천만리장군 묘

천만리장군 묘

  • 천만리는 조선 선조때 중국인으로서 우리나라에 귀화한 분으로 고향은 중극 영양(穎陽)으로 오늘날 천씨들은 그곳을 본관으로 삼아 온다. 그는 아호를 사암(思庵)이라 하고 일찍이 무예에 능하여 특히 활쏘기의 명수였다. 무과를 장원으로 급제하여 진무사가 되었고,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영량사(領糧使)가 되어 종군하고 그 아들 천상(千祥)도 함께 참전하였다.

그리하여 평양과 곽산(郭山)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동래(東萊)까지 남하하여 여러차례 승전하였다. 정유재란(1597년)때에도 울산(蔚山)싸움에 공을 세우고 싸움이 끝난 뒤에도 조선에 영주하기를 희망하므로 조정에서는 화산군(化山君)으로 봉하고 시호(諡號)를 충장공(忠壯公)이라 하였다. 그는 남원의 환봉사 외에도 고성(固城) 호암사(虎巖詞), 청도(淸道)의 황강사(皇岡祠)에도 배향되어 있다.

풍수지리에 능한 이여송장군이 이곳 고리봉 기슭에 명당을 잡아 안장했는대 이 무덤자리를 풍수지리학에서는 무자 천손지지(無子 天孫之地)라고 했는데 '아들은 없는데 많은 자손들이 태어나는 묘자리'가 된다.방촌리에 위치한 환봉(環琫:고리봉)이라는 산줄기에 천장군묘라는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의 주인공은 천만리(千萬里)라 하는 분이다. 천씨는 본래 영양(潁陽) 천씨 단본이다.

영양은 중국 노나라의 지명인데 영양천 세보에는 그 시조는 명나라 초기의 중신 천암(千巖)이라 하는 분으로, 그 후손은 대대로 이곳 영양에 살았다.천만리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천씨들의 중시조로 아호(雅號)를 사암(思庵)이라 하였다.일찍이 중국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명나라 조정의 무신을 있다가 선조(宣祖) 25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취하의 영양사 및 총독장으로 있어 그의 아들 천상(千祥)과 천희(千禧)와 함께 싸움에 참전하여 군량수송 및 그 보급에 만전을 기하여 평양 및 곽산 등지에서 아군이 크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정유재란(1597) 때에는 양호(楊鎬), 마귀(麻貴)등과 함께 세부자가 다시 조선에 나와 직산(稷山), 울산(蔚山)등 여러 곳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명군이 철수할 때 그대로 머물어 조선에 귀하하니 조정에서 그를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또한 훗일에 충장공(忠壯公)이라 시호(諡號)하였다.숙종때 조정에서 그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대보단을 설치하여 이에 종안하였고 순조때는 고성군 호암서원에 봉안하고 현종때에는 청도군의 황강서원에 각각 봉안하였으며, 고종때에는 문경군의 노양각, 진주의 만첨각, 안동의 동산서원에 각각 봉안하였으며 고종 33년(1896)에는 이곳 금지면에 환봉사를 세워 그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휘하에서 전쟁에 참가했던 천장군은 천사했다고 한다.

풍수지리에 능한 이여송장군이 이곳 고리봉 기슭에 명당을 잡아 안장했는대 이 무덤자리를 풍수지리학에서는 무자 천손지지(無子 天孫之地)라고 했는데 '아들은 없는데 많은 자손들이 태어나는 묘자리'가 된다.아무튼 이곳 환봉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천장군묘의 지형은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이곳 무덤 주위에 이르면 마치 따스한 안방에 오는것만 같아 그렇게 세차게 불어오는 눈보라 모진 바람도 잔잔해 지고 고리봉을 향에 등산길에 올라 이곳에 다달으면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단다. 이곳 한보의 산세가 험하지 않다면 더욱 개발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