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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면 행정복지센터

송동면 전설

도깨비 불

1915년경 송기리에 불이 났는데 노인층에서는 이것을 도깨비불이라 했다. 불이 4∼5일간 밤이면 갑자기 불이 났다. 그런데 이 불은 처마 밑에서부터 일어났는데 물 1바가지만 부으면 즉시 번지지 않고 꺼졌다 한다. 불이 심히 남으로 부락민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불난 곳을 감시하고 누구 집에 불났네 하고 고함지르면 그 집에 모여 물을 1바가지 뿌리면 불은 곧 꺼지고 말았다 한다.
하루저녁에 5∼6건씩 났다 한다. 하도 이상해서 이장 등이 남원읍에 가서 문복(점)을 했더니 박인규씨 집 옆에 디딜방아를 놓았기 때문이라며 스님을 불러 독경하면 된다고 했다한다. 사연인즉 샘 위에 디딜방아를 놓았기 때문에 도깨비가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라 했다. 곧 마을에 와서 스님을 데려다 독경을 했더니 곧 불장난이 없어졌다고 한다. 90∼100세 이상(고인이 됨) 노인들은 목격담을 사랑방에서도 사장나무 밑에서 재미있게 이야기 한 것을 지금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바람피우는 여자들 잠재운 돌비석

송내마을(큰몰)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봉수동이라고 불리었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지형이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형상으로 그 가운데 우물이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남근 형상의 산줄기가 마을을 향해 길게 뻗쳐 있는 형상인지라 이 마을에 사는 여자들이 바람을 피우기를 잘 하여 항상 동네가 시끄러웠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승이 마을 앞을 자나갈 때 혀를 차며 하는 말이 "터는 좋은데 불화가 잦은 동네구나" 하자 마침 이 소리를 듣던 마을 사람들이 스님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며 마을 여자들이 바람을 많이 피워 동네가 항상 시끄럽다고 하자 "여근을 남근이 항상 건드리니 바람이 날 수밖에 없구나" 하더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좋은 해결 방법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노승은 마을 앞 2곳에 자리를 잡아주며 한곳에는 남근의 기를 막는 돌비석을 세우라고 하고 다른 한곳은 흙무더기를 쌓고 그 위에 돌탑을 만들라 하였다 그리고 여자가 옷을 벗고 있으니 치마를 입혀라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노승이 시키는 대로 한곳에는 돌비석을 세우고 다른 한곳에는 흙무더기를 쌓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으며 마을 앞 냇가에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그 길이가 10리 버드나무 길이 되었다.
그 후로는 이 마을에서 바람피우는 여자들이 없어 졌다고 한다. 지금은 흙무더기와 돌무더기는 없어져 버렸지만 돌비석은 마을 앞에 남아 있고 수령 300년 이상 된 버드나무가 마을 앞에 장관을 이루며 서 있었으나 20년 전 신작로 개설로 인하여 대부분 소실되어 없어지고 본 마을 앞에 1그루와 부속마을인 간뎃몰 앞에 3그루만이 전설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가덕사 석조여래 입상

가덕사 관음전에 모셔진 석조여래 입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조 불상이며 원래 가덕사 뒤편 계곡에 있었는데 아들을 못 낳은 사람들이 정성껏 기도하면 아들을 낳게 해주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아들을 얻곤 하였다. 그러나 계곡에 있다보니 어떤 해는 폭우가 내려 산사태가 나면 불상이 흙에 뭍혀 버리기도 하고 어떤 해는 흙이 모두 씻겨 내려가 완전한 모습을 드려내 놓기도 하였으나 흙속에 묻혔을 때 기도하러 온 사람들은 흙을 가슴까지만 걷어내고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그래서 수차례 불상을 다른 곳으로 모시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불상을 수십 명이 밀어도 꼼짝도 하지 않아 옮길 수가 없었다 한다.그러다 60여년전 지금의 가덕사 자리에 법당을 새로 짓고 옮기려 했으나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동원이 되어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때 법당을 지을 수 있도록 시주한 송내마을 조아무개가 "부처님 부처님을 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눈비 맞고 흙속에 있는 것이 안타까워 새로 법당을 지어 그곳으로 모시러 하니 그만 가시지요"라고 말하자 그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다. 그 후에 실내로 옮겨져 모셔오다 1990년경 지금의 관음전을 새로 지여 옮겨지게 되었다.

부동마을 전설

1923년경 갑자기 샘골 샘물이 거멓게 변해 사람들이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노인들 이 문복을 해 보니 샘 위에 묘를 조성했기 때문이라 했다한다. 즉시 주민이 동원 금지면 묘주를 불러다 그 사연을 말하고 묘를 파냈다더니 갑자기 물이 맑아져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