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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면 행정복지센터

송내리

송내리 송내(松內)마을

조선시대 까지는 남원군(南原郡) 송내면(松內面) 지역으로 봉수동, 솔안, 소래이 또는 송내(松內)라고 했는데 큰 마을과 작은 마을 3개로 이루어져 있고 큰 마을은 소래이(솔안) 또는 큰 몰이라고 하고 작은 마을 3개중 북쪽 원통산 아랫 마을은 사름몰, 가운데 마을은 댁몰, 남쪽 사촌마을과 경계마을을 간뎃몰이라 불러지고 있고, 일제시대에는 큰 마을을 대촌, 작은3개 마을을 택촌이라 불리다가 근래에 와서 송내라 칭하고 있음.

조선시대까지는 송내방(松內坊)의 중심마을 이었으며 1897년(고종34년)에 송내면(松內面)으로 개칭되다가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흑성면(黑城面)과 병합하여 흑송면(黑松面) 소재지 마을 이었다가 1956년 7월 송동면(松洞面)에 다시 편입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남원시ㆍ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송동면 송내리가 되었다.

송내리는 고려 경종 5년에 전주 최씨와 해주오씨가 처음 터를 잡았으며 그 이후 여양 진씨, 김해 김씨, 남원 양씨, 밀양 박씨, 옥천 조씨 등의 후세들이 터를 잡아 살아오고 있으며 한때는 120여호가 살았으나 이농현상으로 현재는 71세대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봉수동이라 하였는데 그 이유는 풍수 지리학상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봉수동이라고 불렀으며 그 후 큰솔안(큰몰), 작은 솔안(댁몰)으로 불리다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솔 송(松)자와 안 내(內)자를 따서 송내리(松內里)라 하였다.

지리산의 힘찬 준령의 줄기인 해발 330m의 원통봉 줄기를 언덕으로 삼고 남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앞쪽으로 송내천이 흐르고 그 앞 2km 전방에 가마봉과 제안봉이 둘러쌓고 있으며 낮고 잔잔한 산줄기와 능선 사이사이로 농경지인 골짝이 형성되어 있어 넓은 평야는 아니지만 상당한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다. 산이 전체면적의 75%이상 차지하고 수종은 대부분이 소나무이며 기타 잡목과 아카시아 등이 밀집되어 벌꿀을 생산하는 밀원이 되고 있다.

농어촌 도로인 신사선(면도106호)이 마을 앞으로 2차선 포장되어 있고 송동면 간선도로인 지방도 730호선에서 1.1km 떨어져 있고 마을로 진입하는 순환도로가 2개소가 있으며 1일 4회의 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이마을 대부분이 쌀 농사위주의 농업형태이나 10호이 한육우 사육농가, 2호의 대규모 돼지 사육농가가 사육규모를 현대화 시설하여 사육하고 있고. 오래 전부터 유명한 마을 특산물로 알려진 복숭아가 17농가에 25ha 정도재배되고 있으며 기타 과수로는 배가 2농가에 3ha, 단감이 1농가에 1ha가 재배되고 있으며, 비닐하우스 시설농가가 점차 늘어가고 있으며 가덕사 주변에 한봉 사육 또한 늘고 있다.

마을앞 가마봉에 가덕사가 있는데 이곳 절에 석조여래입상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