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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면 행정복지센터

송상리

본래 남원군(南原郡) 송내면(松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원촌리(元村里), 오촌리(鰲村里), 문치리(文峙里), 생촌리(生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송내리(松內里)의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송상리(松上里)라 하고 흑송면(黑松面)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7월 송동면(송동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송동면 송상리가 되었다. 송상리에는 문치(文峙), 원촌(元村), 오촌(吾村), 생촌(生村) 등이 있다.

송상리 문치(文峙)마을

처음 남양 홍씨가 살고 잇는 터에 1307년 고려 충열왕 33년 양성융이란 사람이 이곳에 선영이 있어 정착한 후 남원 양씨의 세력이 늘어나자 남양 홍씨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박씨, 김씨 한씨, 오씨, 정씨, 문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본래 이름은 물래재라 했는데, 마을의 지형이 물래형국이어서 불려졌다. 또한 마을에 서당이 생겨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 글월 문(文)을 써서 문치(文峙)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또 마을 옆에 자래울이란 마을이 있다. 지금은 뜻이 변하여 오촌(吾村)이라 하는데 이 두 마을, 문치(文峙)와 오촌(吾村)을 합하여 문오(文吾)라고 부른다.
북쪽에 남원산성을 등을지고 동쪽은 지리산을 좌편에 남쪽은 송동면에 제일높은 원퉁산을 바라보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산간부 마을이라 할수 있다. 송동면에 제일 고령이며 전면적에 80%가 산지다. 하천이 없는 관계로 농번기에는 물 때문에 곤란을 당하고 있는 마을이었으나 경지정리후 동화댐 농업용수의 공급이 시작된 2005년부터 완전 해결이 되었다.

송상리 오촌(吾村)마을

1600년경 전주 이씨가 터를 잡아 정착한 후 전주 최씨가들어오면서 마을이 부유해졌다. 정유재란 남원성 싸움때 순절한 밀양박씨 후손들이 여양 진씨와 함께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후 해주 오씨, 경주 김씨, 한양 조씨 등 여러 성씨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 이 마을의 이름은 자래울이었다. 마을 남쪽에 자라모양의 바위가 있고 주위의 산 형세가 울타리를 둘러친 형국이라 하여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촌(鰲村)이라 했는데 지금은 지금은 그 뜻이 변하여 나 오(吾), 오촌(吾村)으로 바뀌었고, 자라모양의 바위도 훼손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고 논두렁에 바위만 남아 있다.
과거 흑송방이 있었을 때 이 마을 박태현이란 분이 흑송방 방장을 지냈다고 하며, 1970년대에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될 만큼 마을 주민 서로간에 상부상조하고, 애친경장, 융화단결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마을 전체가 조그마한 야산으로 둘러싸여있는데 마을을 기점으로 동,북,서편으로 조그마한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고, 남쪽으로 올망졸망한 전답이 아름답게 펼쳐져있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송동면 최고봉인 원통산이 자리잡고 있다.

송상리 원촌(元村)마을

원촌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곳 원통산 아래 남원 진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뒤 5년후인 정유재란때에 박기훈이라는 분이 이주하여 남원 진씨와 밀양 박씨가 함께 마을을 형성하고 살다가 김해 김씨가 이주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마을이 원통산 아래에 있어 원통 또는 원텡이라 부르다 원촌(元村)으로 바뀌었는데 내려오는 설에 따르면 원통산이 사촌리의 뒷산과 자리를 바꾸기 위해 둥둥떠서 내려가는데 이를 본 마을 처녀가 산이 떠내려 간다고 소리치자 지금의 자리에 멈춰 내려가지 못하고 자리를 바꾸지 못해 원통하다고 해서 원통산이 되었고 마을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송상리 생촌마을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전 양씨, 유씨, 윤씨가 정착하여 살았으며 그후 김씨,권씨, 하씨가 합세하여 30여농가를 형성했다.
마을 이름은 처음에는 생장촌(生獐村)이라 부르다가 그후 발음이 와전되어 생강촌, 생촌이라 부르고 있다. 처음 생장촌이라고 불렀던 것은 마을의 좌측산이 살아 있는 노루가 누어있는 형국이라하여 진장등(眞獐嶝)이라고 했는데 생장촌 또는 생강촌으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지형은 동북쪽에서부터 서남쪽으로 뻣는 산줄기가 마을 뒷산을 이루고 앞 산에는 황새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어 이산을 밥봉(오적봉)이라고 하며 풍수설로는 부락이 식생활은 풍족하나 산이 너무 가까워서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설이 있다.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거의가 송림으로 덮혀 있으며 산림정책에 의하여 치산이 잘되어 있다.
마을에 수송지란 저수지가 있어 여름철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현재 122번지 유근태씨댁에 범바위라는 호석이 있는데 높이 1.5m, 둘래 5m 가량의 동쪽 진등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 바위를 마을의 수호신이라하여 명절때나 수시로 음식을 차려놓고 치성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