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정사의 삼일왕정
- 귀정사의 중창 유래
- 귀정사 재물담
- 태조봉과 고남산
- 목동리 은행나무
- 승련사와 식련리
- 식련마을 뒤 바위의 전설
- 식련리 당산제
- 석동 당산제
- 월산 당산제
- 부절 당산제
- 부절 관암
- 중절 당산제
- 목동 당산제
- 신풍 당산제
- 태평 당산제
- 등구 당산제
- 대촌 신기 당산제
- 대상 한재 당산제
산동면 전설
귀정사(歸政寺)의 삼일왕정
- 귀정사(歸政寺)는 산동면 대상리에 있다. 백제 무녕왕(武寧王) 재위 15년(서기515)에 세웠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된 유서깊은 사찰중의 하나이다.
- 그런데 이 절은 처음에 만행사(萬行寺)라 했다가 귀정사로 그 이름이 바뀌인 데는 까닭이 있다.
- 옛날 만행산 만행사에는 천하에 이름 높은 고승이 있어 어느덧 이 나라의 왕이 그 이름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의 설법을 들으면 앉은뱅이가 일어선다 하고, 며칠을 들어도 잠이 아니온다 하고 몸의 괴로움이 스스로 없어진다 하였다.
- 왕은 그 고승을 한 번 보기가 소원인지라 하루는 백관을 거느리고 만행사까지 행궁하게 되었다. 이 때 왕이 그 고승을 대하니 과연 도사답게 생겨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려 한다.
- "그대의 설법이 고명함을 듣고 백관을 거느리어 왔으니 불교 교리에 대하여 가르쳐 주어 짐을 즐겁게 할지니라"
- 이렇게 해서 만행사 스님의 설법이 시작되니 그 오묘한 설법을 듣는 사람, 왕은 물론이요, 누구나 탄복하지 않은이 없다. 설법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왕은 고승의 설법을 하루라도 더 듣고 싶어서, "짐은 이곳서 3일간을 머물러 국정을 살필 것이니 백관들은 이에 따르되 잠시나마 서정집행에 소루함이 없도록 하오" 하였다.
- 이와같이 왕이 3일간을 머물러 국정을 만행사에서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이로부터 사찰 이름을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왕은 그의 설법에 깊이 감동한 나머지 "生之 殺之를 我師 同之하리라"며 탄성을 발했는데 이 말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 는 뜻이 되니 왕이 고승의 설법에 얼마나 탄복하였는지 그 정상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 이 절이 왕의 3일간 행재소가 되니 주위의 산 이름과 지명도 따라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의 만행산을 천황봉(天皇峰)이라 하고 그 밑에 좌우 여러 줄기 봉우리를 태자봉(太子峰), 남대문로(南大門路 : 보절면으로 넘어가는 길), 둔병치(屯兵峙 : 보절면 가는 고개)가 있고, 또 대상리(大上里)에서 산동면 소재지로 가는 중간에 당동(唐洞)과 요동(堯洞)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것은 3일간의 귀정사 왕정이 요순시절과 같이 살기 좋았다 하여 이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