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촌리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지역을 배말 또는 주촌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원평(元坪), 주촌(舟村) 및 남원군 상원천면(上元川面) 노치(盧峙) 일부를 병합하여 주촌리라 하여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운봉읍 주촌리가 되었다. 주촌리에는 배말, 원평 등이 있다.
- 고려 현종 5년(1014) 연안 이씨(延安李氏)와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난리를 피해 남쪽으로 유랑하다가 처음 정착하여 살았다. 그후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 등으로 몇차례 전란을 겪었으며 1950년 6.25동란시 지리산 빨치산잔병과 국ㆍ군경 토벌대 사이의 기습과 토벌작전으로 마을은 온통 잿더미가 되었다.
- 하루 아침에 집을 잃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각지이 흩어졌다가 개간하여 1951년 3월경부터 하나둘 모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다시 마을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배몰 또는 배촌으로 지형이 바다에 떠있는 배의 형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마을이 배의 한복판에 있어 항상 배의 뒤를 돌아보아 배의 안전을 살펴야 했기 때문에 배의 꼬리부분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망종리(望終里)라 부르기도 하였다.
- 일설에 의하면 석기시대때 운봉이 큰 호수로 있을 때 사람들이 고리봉에 배를 매고 고기잡이 생활을 하였다가 배말 또는 뱃몰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배주(舟)자를 넣어 주촌(舟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