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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읍 행정복지센터

소리의 맥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근근이 소리의 맥을 이어 오다가 6. 25 동란과 또 그후 서양 음악이 들어오면서 우리 국악, 특히 판소리가 쇠퇴기에 접어 들었다. 라디오, TV, 영화 등에 밀리어 판소리가 쇠퇴일로에 있었으며 정부에서 마저 국악 부흥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그런데다 남자는 군에 가고 또 생업마저 어렵게 되니 소리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근들어 다시 정부에서 관심을 갖게 되고 젊은 층에서도 소리에 흥미와 관심으로 세계에서 우리음악이 제일 빼어남을 알고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들어 운봉출신으로서 판소리에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판소리계에서는 아직도 운봉을 소리의 고장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정춘실

1944년 12월 15일 태어나기는 남원 산동면에서 출생하였으나 그녀의 부친(정성길)이 운봉면 권포리에서 살았으며 아직도 권포리에 집이 남아 있어 본인도 항시 운봉인이라고 하고 있다. 정춘실 아버지는 농악에도 소질이 있어 항시 상쇠를 했다고 한다. 정춘실은 일찌기 남원 강도근 명창에게 흥보가를 배웠고. 17살때 광주로 이사하여 정광수 명창에게 수궁가, 흥보가, 춘향가, 그리고 심청가를 배웠다. 다시 서울에서 성우향 명창에게 춘향가를 습득하여 1991년 남원 춘향제 판소리 명창대회때는 장원을 하였다. 현재는 광주 시립국극단 수석 단원으로 있으며 운봉의 판소리 발전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용수

1946 장교리 태생으로서 현재 국민은행 지점장으로 있으면서 전국 판소리 보존연구회 이사직을 맡고 있다. 1984년부터 조상현 명창에게 춘향가 한바탕과 심청가를 배웠고 정광수 명창으로부터 적벽가를 배웠다. 박초월 명창의 제자인 김수연 명창에게서 수궁가를 틈틈이 배우고 있어 장차 명창이 되기위한 수련과 이론을 공부하며 책을 쓰고 있다. 광주 무등산 국악교실과 서울의 대모산 국악교실을 무료로 개설하였으며 정읍에서도 내장산 국악교실을 개설하여 무료지도하고 있고, TV나 라디오 출연을 통하여 판소리와 운봉을 자랑하고 있다. 1994년 국악 보급 발전의 공로로 문체부장관의 표창을 수상한바 있다. 판소리의 보급및 운봉 홍보의 차원으로 쓴 저서로 "나의 살던 고향은", "붕새는 훨훨", "못다부른 쑥대머리" 등이 있다. (96 중앙일보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중앙일보 인터넷 JOINS인명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