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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읍 행정복지센터

산성

장교산성
  • 장교산성
  • 일명 할미성, 합민성, 합미성이라 부른다. 또한 남원시 이백면 주민들은 방학산성이라 한다. [남원지]에 ´재장교리 후 나제시고루(在長橋里 後 羅濟時古壘〉´라 하였고, ´합민성은 석축으로 주위 약 200간(약 360m)이며 산정에 있다´고 하였다.
    성내 최고봉은 645m다. 성곽은 능선을 따라 서남 방향으로 누에고치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 주위는 319.6m이다.
    성곽의 서남각(西南角)에 우루(隅樓)를 세워 폭(幅) 6m, 길이 8m의 돌출된 적대(適臺)가 있고, 그 동편에 남문, 북편에 우루대 서북각에 서문 등 세 군데의 성문 유지(遺址)가 있고 서북편 중앙에 샘터(正戶址)가 남아 있다.
    성내에서는 다수의 기와조각, 토기조각등 삼국시대의 유물이 채집 되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894년 동학혁명 때 남원 동학군의 공격을 막는 박봉양의민보군이 식량을 저장하고 주둔하였던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성의 북쪽 방아치와 관음치 전투에서 동학군은 패배하였다.
가산산성
  • 가산산성
  • 운봉읍 가산리 북쪽산의 정상부 618m에 위치하는 테머리식 삼국시대 석성(石城)으로 산사면에 붙여서 축성하였다. 이 곳은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와 동면 봉대리 및 가산리의 경계로 운봉 고원에서 요천강에 이르는 산맥 방어 선상의 요지다.
    현재 성의 북쪽으로는 88고속도로가 번암면에서 아영면으로 진입하는 사치(모래재)가 있고 서쪽으로는 운봉읍으로 진입하는 유치가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아영면 봉대리로 통하는 명석치(울도치)가 있다. 즉, 주변 교통로를 감시할 수 있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칭합미성 석축 주위 2백간 요산정(稱合米城 石築 周圍 二百間 繞山頂)´이라 기록되어 있고 [남원지에는] ´가산산성 재가산리 후 나제고루(佳山山城 在佳山里後 羅濟古壘)´라 하였다.
    성의 주위는 217m로 서북 쪽에 서문터가 있고 남쪽 중앙에 남문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판상의 자연석에 가까운 할석을 이용하여 모로 쌓았으며 삼국시대 토기와 와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성 아래에서는 청자와 백자조각도 발견되었다고 하였다.
황토산성
  • 일명 군화동 토성. 운봉읍 가산마을의 남쪽에 있는 황산 북서쪽 사면에 10m 정도의 토성이 최고 2.5m 남짓한 높이로 남아 있다. 이 지역은 과거 경지정리 작업으로 대부분의 유구가 파괴되었다. 성안에서는 돌도끼가 출토되었다고 전하며, 산의 남쪽 사면에서 돌화살과 무문토기, 삼국시대 토기가 수습되었다고 하였다.
신기토성
  • 운봉읍 신기리 토성은 신기 마을을 중심으로 북쪽 야산 구릉을 따라 위치하고 있다.
    성은 급사면을 이루는 남쪽의 협곡에는 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파괴가 심하여 50m 정도가 확인된다. 1960년대 홍수 때 축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지석이 발견되었는데, 건융 13년(1748) 2월 24일 보맥유림만대(補脈有林萬代)의 뜻으로 사주(仕主) 장준대(張俊大)와 별좌(別座) 정태우(鄭太右)의 주관으로 길이 50여m 폭 3m 높이 1.5m의 흙을 쌓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변에서 백제시대의 토기편과 고분군 그리고 무문토기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축성되 토성이 1748년에 마을의 보맥(補脈)으로 다시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고남산성
  • 고남산성
  • 남운봉읍 권포리 고남산에 위치하며 현재 길이는 50m 높이 3~4m로 축성시기는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해발 846.4m의 고남산 8부 능선에 남쪽 사면을 중심으로 축성되었고 북쪽 사면은 축성을 하지 않았다.
    현재 성벽은 6단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는데 본래는 이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고남산에는 현재 중계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산의 북쪽은 경사가 심하고 남쪽은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동학혁명 때 축성하였다고 전해지나 수습된 와편이나 토기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동쪽 골짜기 너머 산등성이까지 석성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중계탑을 세우면서 거의 파괴되고 그 석재는 새마을 사업에 이용하였다고 전한다. 주민들의 말대로라면 포곡식 산성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고남산 북쪽을 따라 오르면 중간 높이에 평지가 있는데 그 곳에 절터로 보이는 돌담이 보이고 그 곳에서 위쪽 7부 능선 서편 경사면에서 석성의 흔적이 확인 되었다.
준향 음지산성
  • 준향 음지산성
  • 운봉읍 준향리 남쪽산 정상에 위치하는 음지성은 준향리 뒷산에 위치하여 준향산성이라고 불리어 왔다.
    산봉형(蒜峯形)이면서 반테머리식 산성인데 산의 서쪽면은 급경사면으로 그 자연적인 사면을 이용하고 동쪽을 중심으로 축성하였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동학혁명 때 쌓았다고 전하나 축성방법이나 출토된 토기 그리고 주변 유적들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운봉 민보군이 실제 주둔한 사실을 문헌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준향 양지산성
  • 준향 양지산성
  • 양지산성 역시 음지성과 함께 준향리산성이라고 불린다. 테머리산성으로 음지성에서 500 ~600m 지점에 있다. 남쪽 봉우리로 동쪽면에서부터 사면까지 축성하였는데 200m 가량이 남아있다.
    남쪽 건너 수정산성과 함께 갓바래재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이다. 갓바래재는 이백면 과립리에서 운봉읍 준향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써 과거 운봉현 남면지역에서 남원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길목이다.
    과거 운봉 사람들이 남원으로 넘나들 때 여원치와 함께 가장 많이 이용했던 고개였다. 역시 축성 시기를 동학혁명 때라고 전하고 있으나 그 이전에 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치산성
  • 노치산성
  • 일명 수정산성이라 한다. 운봉(雲峰)고원 서남단 주천면(朱川面) 구룡폭포 협곡으로 빠지는 통로와 이백면(二白面)으로 넘어가는 노치(갈재)의 북쪽, 이곳은 이백 운봉 주천의 3면 경계를 이루는 해발 740m 고지 위에 위치한다. 남쪽 능선을 따라 덕치산성과 연결되고 지맥은 동쪽 고리봉과 이어진다.
    이 성은 테머리산성으로 옛날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경계에 있어 국경방어 요지로 백제가 쌓은 것이라 한다. 운봉고원인 동쪽 비탈은 해발 약 200m에 불과하나 서쪽은 이백면 소재지인 효기리(孝基里)까지 약 540m 높이의 경사진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성안에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며 운봉읍에 축성된 산성 중에서 장교산성(방학산성) 다음가는 규모이다. [고적조사]에 의하면 ""노치 한미성(翰米城)은 돌로 쌓았는데 돌레 약 100칸(180m쯤) 인바 산 봉우리에 있다.
    "고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고려말 약해진 국세를 틈타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전라·경상지방이 피해가 막심하여 그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산성이라고도 하나 백제가 신라에 대비하여 쌓았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그러나 주천면 덕치리(德峙里)지방이 왜구의 침입로가 된 것은 전남에서 이곳을 거쳐 황산에 이르고, 또 대구 지방까지 연결되는 요지이기 때문이다.
    당시 왜구가 침입 하였을 때 남원쪽과 대구방면에서 각각 공동 전략을 세워 싸울것을 의논하여 남원을 방어하기 위해 노치를 중심으로 산 주위를 삥 둘러 큰 돌을 날라다 쌓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녀자들까지 치마폭에 돌을 날라다 쌓았다고 하며, 곳곳에 굴을 파놓아 대피할 장소도 마련한 흔적이 있다. 또한 바위를 새끼로 묶어 큰 나무에 매어 적군이 산을 기어 오를 때 줄을 풀어 바위가 굴러가 적을 무찔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수미성
  • 성일명 성산성(城山城). 잿뫼산성. [한국의 성곽과 봉수, 1991]에는 수미성을 ´운봉읍 북천리 구읍내리에 위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소형토루지가 있으며 태반이 붕괴되었다´고 하였고, [문화유적총람]에는 ´유래 미상의 석성으로 석축 주위가 약 1,100m정도 였으나 대부분 붕괴되었다´고 하였다.
    주위가 1,100m 규모라면 주변 산성에 비하여 가장 큰 성이며 읍성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읍내리라고 하면 과거 객사를 비롯한 관청 대부분이 북천리에 소재하였으므로 수미성의 위치는 북천리 지역이나 250m 떨어진 북쪽 성산에 위치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역별 산성 분포
지역별 산성 분포 성지명, 위치, 시기, 축성형태, 특징에 관한 표
번호 성지(城地)명 위치 시기 축성형태 특징
1 가산산성 가산리 삼국 석축.테뫼식 둘레 217.0m 북면: 400m
2 황산토성 가산리 삼국 토축 길이 10.0m 높이: 2.5m
3 신기토성 신기리 삼국 토축 길이 50.0m 폭: 3m
4 고남산성 권포리 삼국 석축.포곡식 현재길이 50m. 4m
5 장교산성 장교리 삼국 석축.테뫼식 둘레 319.6m 북면: 500m
6 춘향양지산성 준향리 삼국 석축.테뫼식 둘레 200m
7 춘향양지산성 준향리 삼국 석축.테뫼식 2중 둘레 200m
8 노치산성 주촌리 삼국 석축.테뫼식 250m
9 수미성 북천리 삼국 석축 둘레 1100m